세상의 시(詩)

맨발/문태준

비단모래 2010. 4. 23. 11:22

맨발/ 문태준  



어물전 개조개 한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 속에 오래 잠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 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 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 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출생 1970년 (경상북도 김천)
소속 불교방송 (프로듀서)
학력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 학사
데뷔 1994년 문예중앙 등단
수상 2006년 제21회 소월시문학상 대상
경력 1996 불교방송 포교제작팀 프로듀서
관련정보 네이버<오늘의 문학> - '가재미'

 

 

*어물전에서 조개 한 마리의 발

(도끼 모양의 발이라 하여 부족(斧足)이라고 한다.)

을 보고 시인은 연민을 떠올리고 살아 있음의 수고를 떠올리고 헤어짐과 만남을 떠올리고

 슬픔을 떠올리고 가난을 떠올리더니 마침내 위로를 가져다준다. 문득 가난한 것이 이루어낼 수 있는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하고, 나는 그만큼 가난하지 못한 것이 부끄러워지려 할 즈음,

사는게 절실해야 시가 나온다는 어떤 시인의 말씀도 떠오르고.. 나는 왜 절실하지 못할까. 하는 반성도 하게되는 시

천안함 수병들이 오래도록 물속에서 잠겨있던 맨발이 생각나 코끝이 찡하고

정지용 님의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떠오르는 시 맨발을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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