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는 이야기

사소한,아주 사소한 행복

비단모래 2007. 3. 19. 09:17

 

 

주말내내 봄 감기로 시달렸다.

토요일 아침

기침하다 토하다 기진맥진 되어 있었다.

 

마술사 같은 봄은 온 천지 꽃세상을 만들어 가는데

내몸은 환절기 기온차를 이기지 못해 감기꽃이 피어 쿨럭였다.

병원을 다녀와 기진하게 늘어진 나를 보고 큰 아들이 일어나란다.

엄마 기분전환 하게 핸드폰을 바꾸어 준다고 했다.

 

아들에게 조금 서운해 있었다.

금요일 저녁 직장회식자리에서 얼마나 술을 많이 마셨는지

새벽에 들어 온 아들은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 속이 확 울렁였다.

눈이 헐겁게 들어간 아들에게 마를 갈아먹이고 묵비권을 행사했다.

 

'아니~이 나이에 남편에게 보지않은 꼴을 아들에게 보다니...'

혼자 궁시렁 거렸다.

 

그런 아들이 엄마에게 봉투하나를 내밀었다.

"이거 엄마 용돈...월급외에 성과금 받았는데

아버지랑 맛있는거 사드세요" 하며 내민 봉투에는 수표두장이 들어있었다.

속물엄마는 그 봉투를 받아들고 웃고 말았다.

울 아들이 언제 술먹고 그랬는지 까맣게 잊고.

 

그러더니 토요일 아침 기진하게 쓰러져있는 엄마에게 미안했는지

엄마 핸드폰을 바꿔준다고 일어나란다.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핸드폰도 아들이 군대제대기념으로 선물해줬었다.

 

3년을 썼더니 기체도 고장나 AS를 몇번 받았고

여기저기 긁힌 흔적으로 지저분해진 핸드폰을 보고

주변에서도 왠만하면 핸드폰 바꾸라고 했다.

그래도 아들이 해준 핸드폰이라고 내 딴엔 소중했다.

 

그 핸드폰을 바꾸잖다.

"그냥둬..잘되는데 뭘.."

"에이..그래도 아들이 바꿔준다고 할 때 얼른 바꿔요

엄마 기분도 풀고..그래야 감기도 나을 것 같아요...그리고 엄마 죄송해요

저 땜에 더 감기가 심하신 것 같아요...앞으로 정말 조심할게요"

 

아들 손에 이끌려 몇군데를 다니다 내맘에 드는 핸드폰이 골라졌다.

"엄마는 참 특이한 거 좋아해요..엄마 맘에 들면 하세요"

선뜻 아들이 돈을 지불해서  고른 진붉은 색 핸드폰

어제 하루 내내 핸드폰 익히느라 감기든 것도 정말 잊었다.

 

아들에게 서운했던 것 금세 잊게한

참 사소한 ...사소하지만 행복함을 느끼게 해 준 아들에게 고맙다.

 

오늘

돌아가신 친정어머니 생신이다.

새벽 4시쯤 잠이깼다.

불현듯 그리운 어머니

어머니는 맑은 미역국을 좋아하셨는데 오늘 아침 미역국이라도 끓일까 생각하다

그만두었다.

살아계실때도 제대로 딸노릇도 못했는데

돌아가시고 난 뒤 끓이는 미역국 무슨 소용이 있겠나 싶었다.

그냥 조용히 어머니를 기억하고 싶어 새벽바람부터 주방부터 거실까지

걸레질을 하면서 어머니를 떠올렸다.

 

청빈한 선비의 아내로

가난속에서 6남매를 길러내신 어머니

잘한다 잘한다 ~착하다 착하다만 하신 어머니

토요일 저녁 6남매가 모이고 일요일 점심을 함께 먹고...

우리 형제들도 참 대단하다...아니 오빠들이 참 대단하다.

그 바쁜 일상에서 그리고 서울에서

아주 자주 아버지 계신 대전으로 내려와 함께 밥먹고 동생들 챙기고 하는걸 보면...

그게 다 어머니 사랑으로 길러내셔서 이지 않을까?

 

아버지 곁에 둘러앉아 아버지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하는 우리 6남매

자식들 곁에 두고 이야기 해주시는 걸 좋아하시는 아버지...

참 행복한 일이다.

 

오늘 아침

출근하는 남편이 말했다.

"한주간도 행복하게 보내"

 

이 말 한 마디...참 사소한...사소하지만 큰 행복이다.

 

따스한 봄바람이 온천지를 달리며 세상을 쓰다듬으면

그 온기에 꽃천지가 될테고.....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얼음을 녹이는 것은 따뜻함이다.사람은 따뜻해야 한다."

 

띠릭...핸드폰에 문자가 울린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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