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이면 그 간이역에 가고 싶다
전영관
비오는 날이면
마지막 열차를 타고 그 간이역에 가고 싶다.
젖은 몸으로 하늘 향해 나란히 누워 손짓하는
침목枕木과 침목들
지금은 기억에서 멀어진 그 간이역까지
함께 떠나고 싶은 코스모스의 행렬을 데리고
차창 밖 어둠에게 손을 흔들어 주며 떠나고 싶다.
하루에 몇 차례씩
긴 하품처럼 기적이 울리면
배웅해 주는 사람, 마중 나온 사람 없는 대합실
썰물처럼 어쩌다 한 두 사람 문을 밀치고 나가면
대합실 밖에서 기다렸다는 듯 달려 들어오던 빗소리
지금쯤 열차는 어느 역을 떠나 가쁜 숨을 내쉬며
달려오고 있을까?
잊는다는 것은
마지막 목례도 없이 헤어진
그 사람의 이름까지도 모두 잊어야
정말 잊어지는 것이라고,
이별한다는 것은
뒷모습을 돌아 보지 않아야
정말 이별하는 것이라고
대합실에 어둠이 내리면
추억처럼 하나 둘 등불이 켜지던 그곳
기약 없는 만남의 준비를 위해
이처럼 설렘으로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비오는 날이면
마지막 열차를 타고 그 간이역에 가고 싶다.
대합실 창에 어깨를 기대고 눈을 감으면
보일 듯 보일 듯 추억처럼
멀리 파란 시그널이 밤 새워 기다리는 그 곳
텅 빈 대합실 의자에 앉아 아직 오지 않는 막차를
나는 기다리고 있다
* 그렇습니다. 우리는 가슴속에 '파란 시그널이 밤 새워 기다리는 그곳'을 모두 하나씩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곳이 '고향'일 수도 있고, '만나고 싶은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또 '꿈'이나 '이상'일 수도 있겠지요.
이것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스스로 나에게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것을 향해 다가가야만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텅 빈 대합실 의자에 앉아 아직 오지 않는 막차'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추억처럼 하나 둘 등불이 켜지던 그곳'을, '파란 시그널'이 있는 그곳을 동경하며
'설렘'으로 다가가려 합니다.(전영관)
----------------------------------------------------------------------------
비오는 날
나도 기차를 타러가고 싶다 .빠르게 달리는 KTX가 아니라
천천히 달리는 완행열차를 타고 차창밖으로 빗물이 치는 풍경을 바라보며
홀로서서 비에 젖는 은사시나무를 바라보고 싶다.
고단한 삶을 온몸에 두르고 기침을 쿨럭이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삶은 늘 그렇게 윤기나는 것이 아님을..하지만 기차처럼 느리게 목적지를 가는 것임을
느끼고 싶다. 늦은 저녁 붉게 붉드는 강속의 노을을 지나
네 품으로 가고싶다.
사랑은 결국 현재
과거의 사랑은 아름답고 미래의 사랑은 설레지만
현재의 사랑은 뜨겁기를.
현재의 삶도 뜨겁기를.
비오는 날이면 그 간이역에 가고 싶다.
너와 만났던
너와 이별하던
너를 기다리던
너를 또 기다리는...
' 세상의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름철 쌀 보관 어떻게 하세요? (0) | 2010.07.22 |
---|---|
사랑은 맛을 보는 것 (0) | 2010.07.21 |
화분이 있던 자리-이순옥 (0) | 2010.07.05 |
너와 나라는 말 사이는 너무 아득해서 푸르다-윤석산 (0) | 2010.06.29 |
사발, 낯선 설렘을 보다-전현숙 (0) | 2010.0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