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는 이야기

아버님과 2박3일을 함께하다.

비단모래 2007. 1. 24.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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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시댁의 자랑  ..진안 마이산 입구 독립지사 이재명의사 비와 동상

 

월요일 부터 오늘까지 3일간 꿀맛같은 휴가가 생겼다.

너무도 숨가쁘게 살아온 내게 생긴 이 휴가

어딜 갈까 궁리했다.

방학맞은 둘째동서와 울산 세째동서네 가서 정자바다와 간절곶을 다녀올까?

생각하다 이 휴가를 시골에 가서 아버님과 지내고 오자는 마음이 들어

둘째동서에게 전화를 했다.

 

"동서 ~우리 시골가자"

 

그리고 울산 세째동서에게 전화를 했다.

"자네~큰 아이도 대학가고 했으니 혼자두고 시골에 가자~첫차타고 올라 와"

 

월요일 아침

울산동서가 전화를 했다.

 

"형님 ~여기 칠곡 휴게소 인데요~아홉시 오십분이면 터미널 도착해요.

첫차 탔거든요?

나는 하하 웃었다.

 

"형님 말이 무섭긴 무섭구나~그래 내가 터미널로 나갈게"

 

이렇게 해서 우리 세동서는 정말 모처럼 여자들만의 겨울여행을 시골 아버님께

가게 되었다.

 

 

 

                                                                                  우리시댁    진안이씨 시조 제각

 

시골가는길 금산을 지나는데 마침 월요일 2.7 금산장이 열리고 있었다.

금산에서 인삼막걸리 한병을 샀다.

 

"우리 저녁에 삼겹살 구워서 아버님과 인삼 막걸리 마시자"

 

그리고 장에서 이것저것 반찬거리와 과일을 샀다.

 

그리고 부귀에 들려 진안명물 꺼먹돼지 삼겹살도 샀다.

아버님은 얼굴에 꽃이피셨다.

혼자서 적적하게 지내던 너른 집에 세 며느리의 웃음소리가 들리니

얼마나 즐거우신지.

도착하자 마자 아버님께 절을 하고 음식을 장만하기 시작했다.

 

나는 음식을 하고 둘째는 청소를 하고

세째는 설겆이를 하고..

 

방에 신문을 깔고 삼겹살을 구워 아버님과 함께 인삼 막걸리를 마셨다.

 

"아니~어떻게 이렇게 왔어~"

"큰형님 말씀이 무서워서요. 방학 며칠이라도 아버님 따뜻한 진지 지어드리자고

하셔서 그냥 왔어요..오니까 좋으네요"

경상도 말로 말하는 세째동서의 말을 들으며웃었다.

막걸리 한잔이 가슴을 따뜻하게 했다.

 

어머님 돌아가시고 3년

적막강산 같은 집에 홀로 계시는 아버님은 올해 8순이 되셨다.

허리도 굽고 손도 떨리는 아버님~

 

저녁 먹고 나니 6시30분

이미 고향은 어둠의 바다였다.

아버님과 넷이 앉아 12시까지 ...긴 겨울밤을 이야기 꽃을 피웠다.

 

 

 

 

 

이튼날은 새벽 6시에 일어나 아침을 지어드렸다.

밥 한그릇을 다 비우시는 아버님~그래도 그만하게 건강을 지켜가시는 것이

식사를 잘하시는 것이리라~

 

점심에 아버님을 모시고 진안 읍내를 나갔다.

점심은 나가서 사드렸다.진안장에도 들렸다.

 

그리고 아버님과 마이산을 보러갔다.

시댁 동네에서 20여분 거리에 있는 마이산

언제 봐도 아름답고 신기한 산이다.

 

결혼하고 잔치하는 동안 뜨거운 방에서 신부노릇하는 하는 나를 살짝 빼내어

남편은 마이산을 왔었다.

하루종일 방에서 앉아있으려면 너무 힘들다고..어른들 눈치봐가며 편리를 봐 주었다.

8남매 맏며느리를 본 잔치집에 색시를 보러오신 동네 어른들이 실망하신 모양이다.

 

아버님 안색이 불편하셨지만

남편은  도시며느리를 너무 고생시킨다며 나를 데리고 마이산으로 가서

약수물도 먹이고 마이산 아름다운 풍경을 설명해 주었다.

 

아마 그 정이 아니었다면 28년 결혼생활  힘든 고개를 넘기 힘들었으리라.

 

나 시집갈때 어머님은 47세 아버님은 53세 셨다.

그 젊으셨던 분들이..어머님은 돌아가시고 아버님은 8순이 되셔서

숨을 쉴 수 없도록 엄하시던 그 퍼렇던 아버님의 기상이 다 사라지셨다.     

   

                                                                둘째동서. 아버님 .세째동서

 

마이산을 다녀와 냉이를 뜯었다.

동네 밭에 빨간 잎으로 엎드린 냉이를 호미로 캐면서

세 동서는 정말 시골오길 잘했다고 재밌어 했다.

하루만 자고 오려니 했던 아내들이 하루 더자고 간다고 하니

남편들은 허허 웃었다.

 

이상하게 잠이 않온다는 남편들~

 

거봐~그동안 아내가 얼마나 소중한 역할을 했는지 알아야 돼~라며

세동서는 깔깔댔다.

 

 

 저녁은 둘째동서가 김치전을 부쳤다.

김치에다 깻잎 달걀 감자 갈아넣고 돼지고기 다져넣고

또 방에다 신문을 깔고 후라이팬을 놓고 직접 부치며 어제 남은 인삼 막걸리

마셨다.

 

아버님은 머루주 한병을 내놓으셨다.

 

"이거 염소막 앞에 있는 머루나무에서 딴걸로 담은거여~한잔씩 해봐"

 

동서들은 막걸리 한잔에 벌써 가슴이 뜨겁다고 했지만

아버님이 담가놓신 빨간 머루주를 한잔씩 따라주며

아버님 사랑이니 마시라고 동서들에게 한잔씩 따랐다.

아버님께도 석잔 따라드렸다.

금방 부친 김치전과 먹는 머루주는 달콤 쌉쌀 했다.

 

목줄기가 뜨거워졌다.

 

.......................................

 

오늘 아버님을 놓고 돌아왔다.

 

아버님께 가겠다고 절을 올리자 "그래 몸조심해라"

대문앞에 서신 아버님은 오래도록 손을 흔들고 계셨다.

백밀러에 비친 아버님 모습은 너무 작았다.

작은 아기 같았다.

 

가슴이 울컥했다.

세동서는 눈물이 고였다.

 

또 어찌 그 긴 겨울밤을 홀로 보내실까~

 

둘째동서 아파트앞에서 동서들 점심을 사 먹였다.

그리고 터미널에서 울산 동서 차표를 끊어 보내고 집에 돌아왔다.

 

"동서~먼길 수고했어~잘가~"

"형님 돈 너무 많이 쓰셔서 어떡해요" 라고 걱정했다.

 

괜찮아~정말 괜찮아~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준 2박3일 이었으니~

 

도시의 일들을 잊고

까만베일 아래서 먼지없는 공기를 마시며 복잡한 뉴스조차 듣지 않고 지낸 2박3일

내 복잡한 일상이 체에 걸러져 깨끗한 알곡만 남은 산뜻함이었다.

 

물론

빨리 출근해 스텝회의 하자는 전화가 나를 다시 일상으로 내 몰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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