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는 이야기

오래된 일기

비단모래 2007. 1. 16. 14:42

 

 

내 서재에는 그동안 내가 써온 일기장들이 나란히 세월의 무게를 안고

침묵하고 있다.

지금은 노트에 쓰는 일기는 사라졌고 그저 다이어리에 메모정도 해놓을 뿐이고

나머지는 블로그에 일상을 쓰고 있다.

 

잠이오지 않는 날이면

내 서재에 들어와 묵은 일기장을 펼쳐본다.

어려서부터 일기쓰기를 즐겨했다.

결혼해서도 일기를 계속 써왔다.

그곳에는 결혼생활의 갈등도 즐거움도

아이를 기르는 기쁨도 힘듦도

그리고 가족 ..이야기와

결혼 첫해 받은 남편의 월급봉투도 달마다 붙여져 있었다.

 

79년 남편에게 받은 월급봉투...

급여액이 14만원이었다.

거기에서 100만원짜리 적금 8만원을 넣고 연탄 오십장을 사고

쌀 두말을 사고..콩나물 100원어치..등등이 적혀있다.

웃음이 나왔다.

그때는 남편월급이 20만원만 되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그때는 남편의 월급날이면 아이들에게 통닭한마리를 사주며

즐거웠었다.월급봉투를 내밀며 늘상 미안해 하던

남편에게 적은 용돈을 주면서도 웃을 수 있었다.

 

남편이 월급을 타왔는데 나갈것보다 적다고 적혀있던 날도 있었다.

8남매 맏며느리에게 명절과 어르신들의 생신은 지출이 컸다.

그래서 남편 모르게 울었다 라고도 적혀있었다.

그래도 그시절이 지나갔다.

 

남편 월급이 100만원쯤 되었을때 정말 부자같았다.

이돈을 어떻게 다 쓰나..걱정아닌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도 턱없이 부족했다.

그런데도 참 신기한것이 그 월급에 맞춰...잘 살아온 세월이었다.

아이의 그렇게 많은 수술비를 냈는데도..(1억쯤은 되는것 같다) 빚 지지 않았고

물론 남편 회사에서 대출받아 월급에서 몇년씩 갚았지만 ...

어떻게 그세월을 살아왔는지.

동생들 결혼 다시키고...

집을 사고..차를 사고..아이들을 가르치고..남편이 7년간 공부를 하고..

그런 세월이 차곡히 일기장에 실려있다.

 

 

 

내손에 잡힌 건 91년 일기장 이었다.

 

91년에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로 이사왔다.

91년에 시누이 결혼을 시켰다.

91년 남편 일본 출장도 있었다.

91년에도 작은 아이 수술을 했다.

91년에 방송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그 일기장에는 내가 91년 1년간 살아온 일들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어느 신문에 1달에 한번씩 쓰던 칼럼도 스크랩 되어 있었고

큰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때 학교신문에 썼던 시도 스크랩되어 있었고

그리고 큰 아이의 편지도 가지런히 꽂혀있었다.

 

병원에 입원해 수술하고 106일만에 퇴원한 작은 아이의 병원일기도

아픔의 흔적이 희미해진 채 추억으로 남아있다.

 

어떻게 그많은 아픔을  이겨냈을까?

어떻게 그 절망의 시간들을 넘어왔을까?

 

 

25년 근속을 한 남편의 월급도 참 많이 올랐다.

그렇다고 그때나 지금이나 부족한건 마찬가지지만

그저 눈부시게 가정을 이끌어갈 만큼되니 감사하다.

 

남편에게 월급적다고 투정해 본적도 없고

시댁에 일이 생겼을때 돈때문에 갈등은 했지만 불평하지는 않았다.

 

어젯밤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다 좀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월달 시아버님 8순 생신잔치를 준비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준비할게 참 많다.  더구나 설 쇠고 바로 생신이다 보니

다른 형제들도 설 지내고 부담이 클것같다.

더구나 세째네는 대학가는 조카도 있고...그러다 남편에게 말했다.

이것보다 어려울때도 다했는데..걱정하지 말자

동생들보다 우리가 좀더 쓰면 되고...그것보다 어려운일도 잘 넘겼는데 뭐..

 

일기장을 접는다.

 

달리기를 할때 넘어졌다 일어서 다시 힘차게 달리는 사람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는 말..그말을 가슴에 담으며.

 

나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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