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는 이야기

동지

비단모래 2019. 12. 22. 19:50

 

 

#팥죽

 

2019 동지

집에서 팥죽을 끓일 엄두는 안나고

그래도 1년에 한 번

팥죽은 먹고 넘어가겠기에

 

0순위인 그에게

팥죽먹으러 진안고원시장에

나가자고 했더니

서슴없이 일어선다

 

진안팥죽집은 그야말로

팥죽먹으러 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두 그릇을 시키고

자리에 앉으니

김치ㆍ시금치나물ㆍ명아주묵나물ㆍ

배추나물이 반찬으로

가지런히 나와 상을 채운다

 

펄펄 끓는

찹쌀옹심이 팥죽 두 그릇이

다정하게 앞에 와 멈춘다

 

아 아득한 이 맛

입안에 가득해지는 고소한 팥맛

부드러운 찹쌀 옹심이 맛

따끈하고 부드러움이

목울대를 타고 내려가

저 심연의 마음까지 닿아

위로를 건넨다

 

위로는 별게 아니었다

한 겨울

가장 낮고 여리게 엎드린 풀은

아직 파랗게 살아있고

겨울 비올라

장독대 앞에서

꽃 피우고 있다는 것

 

겨울이 절망의 계절이 아닌

견디는 계절이고

기다림의 계절이고

팥죽 한 그릇에

흐물흐물 녹는 계절이다

 

^팥죽 쑤어 문앞에 두고 갑니다^

 

집에 오니 백김치와 깍두기와

팥죽을

날 기다리게 해 놓은

그녀의 문자를 받고

그녀의 손을

뜨겁게 잡고 싶다는 것

 

심장으로 안아주고 싶다는 것

 

동짓날 짧은 해

기울고

나는 바람소리로 마음을 닦아낸다

'세상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0 첫 날  (0) 2020.01.01
송년시낭송  (0) 2019.12.29
나는  (0) 2019.12.21
결혼식  (0) 2019.12.16
솟대  (0) 2019.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