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는 이야기

별들의 마음을 듣다

비단모래 2016. 4. 21. 14:13

 

모처럼 무궁화호를 타고 영등포에 내려

영등포에서 인천행 전철을타고

다시 한 번 갈아타고

찾아간 인천 서운 중학교

 

내 작은 오빠가 한문선생님으로 근무하는 학교엘 방문했다.

오빠가 선생님이 되시고 내년이면 정년이신데

오빠가 몸담은 학교를 처음 가보는 기분

참 설레고 심장 쿵쿵 뛰는 일이었다.

 

오빠는 선생님이시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중학교 입학 대신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

이미 돈을 버는 일을 하고 있었다.

신문배달은 기본이었고 아이스께끼통을 짊어졌고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시계 케이스 만드는 공장엘 들어가

돈을 벌었다.

 

그 어린 오빠가 버는 돈은 우리집의 살림을 어렵게나마 이어가는 끈이었다.

그러다 오빠는 시계케이스를 찍어내는 기계에 손을 다쳤다.

그 기계는 쇠를 자르는 것이니...어린 손의 뼈야 남아나기 힘들었다.

그러나 기적이었다.

오빠의 손가락은 그대로 있었다.

 

그날 밤 고통을 참는 오빠의 모습을 어렴풋이 보았다.

파르르 떨리던 오빠의 손...

눈물이 났었다. 표현도 못하고..

 

오빠는 양복점으로 직장을 옮겼다.

그러며 그의 10대에서 20대 초반을 양복기술자로 보냈다.

오빠의 월급날은 내게 기다림 이었다.

두살 더 먹은 오빠가 사주는 짜장면 한 그릇

내게는 천국이었다.

 

오빠는 재봉틀을 많이 돌려서인지 늑막염을 앓았다.

밤마다 쿨럭였다.

하얗게 시들어갔다.

우리 오빠는 ...

 

오빠가 양복점에서 지내는 그동안 어떤 아픈일이 있었는지 잘 모른다.

그러나..그당시 기술자들의 갑과 을..

횡포이다 시피한 시다 시절의 아픔..얼마나 많았을까?

그러다 우리오빠는 기술자가 되었다.

 

오빠가 남은 양복천으로 만들어 준 치마를 입고

얼마나 뿌듯했는지 오빠는 알까?

변변한 옷이 없는 동생을 위해 만들었을 치마였으니...

 

오빠는 스무살이 넘어 공부를 시작했다.

영어 알파벳을 열심히 외웠다.

처음엔 양복지에 써 있는 영어를 알려고 했다지만 오빠의 가슴엔 꿈이 있었다.

중.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합격했다.

 

참 자랑스러웠다.

그러고 우리 작은오빠는 공주사범대학교에 당당히 입학했다.

오빠의 입학식을 보러갔다.

 

오빠는 나를 보고 ...

미안해 했다.

 

오빠와 같은 처지에 있는 나를 두고 대학에 혼자 입학한다는게 나에게 미안한 일이었나보다

나는 참 자랑스러웠는데...

오빠의 졸업식에도 나는 갔었다.그때도 오빠는 나에게 무지 미안해 했었다.

나는 참 자랑스러웠는데...

그리고 오빠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오빠는 선생님이 되셨다.

남들보다 몇 년 늦었지만

우리 오빠는 정말 자랑스런 선생님이 되셨다.

오빠의 지난한 어린시절, 이프고 힘든 그시절이 있었기에

오빠는 고등학생 제자도 중학생 제자도 품어안았다.

이해할 줄 알았다.

그들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았다.

나는 그게 또 그렇게 자랑스러웠다.

 

오빠는 지금 중학교 한문 선생님이시다.

담임하는 반 학생들에게 늘 꿈과 웃음을 주신 우리오빠는

올 2학년 제자들에게 매달 아름다운 예술제를 열어주신다고 한다.

 

가야금 연주도

방송댄스도

그리고 이 달은 시인으로 시낭송가로 활동하는 나를 불러

학생들의 시낭송을 함께하게 했다.

 

바로 아래 여동생도 시낭송대회 최우수상을 탔기에 동생과 동행했다.

 

오빠의 동생들은 오빠의 멋진 모습을 보게 되어 기뻤다.

2학년 학생들이 직접 쓴 시를 가지고 낭송했다.

교감선생님과 다른 선생님들이 지켜보시는 가운데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의 시낭송이 시작되었다.

 

진지하다.

아무도 떠들지 않았다.

그리고...귀를 기울여 경청했다.

 

나는 그 학생들 모두에게 일등상을 주었다.

대상,최우수상,그랑프으뜸상.최고상,그랑프리상,챔피언상..

모두 일등이었다.

 

지켜보는 선생님들도 교감선생님도 눈물을 훔치셨다.

오빠가 마지막 소감을 말하셨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동생...내가 대학에 갈 때 가장 미안했던 동생이...

마흔둘에 중학교에 가서 공부를 시작하더니..12년을 공부해 대학과 대학원을 나왔습니다.

 

내 이야기였다.

부끄럽지 않은 내 이야기였다.

그리고 시인으로 시낭송가로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 동생을

오빠는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계셨다.

 

그런 오빠

그 오빠의 학교에 가서 별들의 마음을 듣고 왔다.

 

시낭송을 해주며

이 시 한줄로 꿈을 이뤄가기를 간절히 바라며

정성껏

시낭송을 해주고 돌아왔다.

 

별들을 가슴에 안고,,,

 

 

 

무궁화호
비단모래

훨씬 느린시간을 타고
서울에 도착했다

그러나 생이 늦은 건 아니었다

차창 밖
초록도 느리게 보였고
피는 꽃도
지는 꽃도
느리게 지나갔다

놓치고 지나던 풍경
무심히 스치던 사람
천천히 천천히

대전에서 신탄진을 거쳐 부강역 조치원역
전의역 소정리역 천안역 성환역 평택역
수원역 영등포역 낯설고 익숙한 풍경을 지나

결국 서울에 도착했다
늦지 않았다

 

**별들의 마음을 듣다
비단모래

여기 있었구나

수줍지만 시간을 지휘하는 지휘별
우리는 항상 별이라던 씩씩한 남식별
아름다운 상봉의 다리를 짓는 은하별
우리반 친구들을 사랑하는 경필별
9반 지킴이 유림별
행복한 교실을 만드는 상호별
풀잎도 아름답다 빼어난 시를 수놓은 수민별

그리고 환호하며 박수치던
별 무더기 무더가들


하늘의 별들 곱게도
접어
땅으로 날아왔구나

볓빛에 닿는 꿈을 꾸고
볓빛에 닿는 꿈을 이루고
별빛에 닿는 사랑하기를

세상에서 아름답고 행복하게
꿈을 이뤄 내
별빛에 닿는 길이 되기를

시를 읽고 노래하고 그림그리고 꿈을꾸고
박수치고 달리고 함께 웃으며
강으로 가는 냇물로 흐르기를
바다에 이르는 강물로 흐르기를
세계로 나가는 힘찬 물결이 되기를...

별들의 마음을 듣다
별빛을 가슴에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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