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는 이야기

그 분을 다시 기억하며

비단모래 2015. 7. 2. 10:11

 나는 어떤 인연으로 이런 사랑을 받을까요?

아무것도 한게 없는데

부여 오이 비닐하우스에서 땀흘리던 그 아저씨

이렇게 오이를 보내왔습니다.

제발 핸드포으로 주소좀 찍어달라고 하셨어도 농사짓는게 얼마나 힘이 드는지 알기에

우리시아버님 처럼 허리 무너져 내리는 일인 줄 알기에

주소를 보내지 않았는데도 오이는 이렇게 제게 왔습니다.

그냥 멍하니 그아저씨를 생각합니다.

얼굴도 모릅니다.

부여에서 오이농사를 신바람 나게 지으신다는 것 밖에..

우연히 정말 우연히 알게 되었지만 얼굴도 모르는 그 오이 아저씨

그 손길이 스친...그 마음이 스며든..그 땀이 익힌 오이가 왔습니다.

 우선 고맙다고  왜 그려셨냐고 전화를 드렸더니

내가 하는 거니까...내가 열심히 한거니까...맛보여주고 싶어서...라고 하셨습니다.

오히려 너무 적어서 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맛있게 먹을게요..라고 전화를 끊고...

단 한개라도 허투루 다루면 안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0개는 뒷동사는 며느리에게 주고(실은 며느리 어머니 사돈도 뒷동에 사시니 나누어 드리라고 )

10개는 소금물을 팔팔 끓여 뜨거울때 부어놓았습니다.

오이지...

한여름 입맛없을때 꺼내 꼭 짜서 고추가루 깨소금 마늘 참기름 매실액 조금넣고 무치면

정말 맛있는 여름반찬이 되니까요.

마음이 든든해 졌습니다.

그리고 양파 청양고추 오이를 송송 썰어

금방 먹을 수 있는 오이장을 담갔습니다.

멸치와 다시마를 넣고 팔팔 끓이다가 진간장을 넣고 매실액을 조금 넣고 식힌다음

부었습니다.

이건 바로 먹을 수 있는데

아삭한 양파와 향긋한 오이향 매콤한 청양고추맛이 일품이랍니다.

매년 조금씩 몇차례 나누어 담가 먹습니다.

후후..실은 불량주부 입니다.

그렇게 똑 부러지게 살림하는건 아니고요*^^*

이렇게 해서 냉장고에 넣어두었습니다.

아...

그리고 한개는 지난 주말 시골에서 뜯어온 돌미나리 달래와 함께

고추장에 무쳐서 저녁밥상에 차려줬더니 남편이 향긋하다고 잘 먹었습니다.

반찬 한가지 해주었는데도 감동하는 남편...

불량주부의 덕입니다.

평소 잘 해주었다면 이런거에 감동 안했을 텐데

작은 것에도 감동하네요...고마울 따름입니다.  

 

 

저 뒷배경은 우리집 양념통입니다.

천일염 국간장 꽃소금..어린시절 보았던 내 어머니 처럼

옹기그릇을 사용합니다.

시댁에서도 간장그릇은 옹기였습니다.

주전자처럼 생긴 옹기에 간장을 넣어두고 먹으면 나중에는

소금알갱이가 다이아몬드처럼 눌어붙기도 했습니다.

 

작은 옹기 양념통을 볼때마다 장독대를 생각합니다.

예전 어머니의 손길로 배를 불렸던 장독대

속상하면 달려가 장독을 닦고

자식들 잘되라고 물한그릇 떠놓고 빌고

그리고 다독다독 장을 다독이며 가족을 다독인 어머니 마음이 발효된 장소 장독대.

 

어머니는 그 장독대를 두고 가셨습니다.

이젠 그 장독대를 내가 다독일 차례입니다.

도시에 산다고 실은 그 장독대를 돌볼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나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꾸 장독대에 눈길이 가는건 ...

나도 장독대에서 풀어놓을게 많다는 건 아닐런지요.

 

아..

오이 정말 잘먹을게요.

고마워요 오이아저씨.

오늘도 그대는 비닐하우스에서 땀흘리며 자식처럼 오이를 기르고 계시겠지요.

 

(이글은 2012년 5월4일에 썼던 글입니다.그분이 기억나 다시 한번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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