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아리를 쓸모있게 하는 것은 도공이 빚는 흙이 아니라
항아리 안의 빈 공간이다.
-노자
봄 개편이 마무리 되었다.
개편~새로운 아이템과 새로운 진행자와 새로운 포맷으로
시.청취자들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단행하는 개편~
무성한 의견과 알지못할불안이 프리랜서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기간
봄개편!
한 후배작가가 조용히 말했다. 평소에도 말이없이 제 할일을 하는 작가였다.
"저 이번 개편에 그만 두려구요! 아무래도 저는적성이 아닌것 같아요."
그 말이 왜 그렇게 쓸쓸하게 들렸을까?
그 작가는 라디오다큐를 만들어 수상도 했고 그야말로 글발을 인정받는 작가인데
그렇게 앓고 있다니...
그 마음앓이를 미처 헤어리지 못했다니...
내 마음이 싸하게 무너져 내렸다.
나도 그렇다.
지금까지 봄 가을 서른다섯번의 개편의 맞았다.
17년~
아직도 소질이 없는가 보다 라고 늘 시달리고 있다.
그러다 마음을 쓸어내리기도 하고
돌아서 술 한잔 마시며 툭툭 털어내기도 하고
아예 무시하기도 하면서 지금까지 견뎌왔다.
맞다 그냥 견뎌온거다.
그렇다고 보람이 없었던 건 아니다.
세상을 열심히 살아가고 계신 분들을 수없이 만났고
방송을 시작하며 처음 만났던 애청자들과 지금까지도 인연이 되어 연락하는
우정을 쌓고 지내는 분도 있고..어제는 다른 작가를 통해 몇년전에 출연했던 분과
연락이 되어..나를 기억하는 청취자를 만나기도 하고
농촌에서 어촌에서 산촌에서 본분을 지키며 열심히 살아내는 분들을 만났고
충청도 곳곳의 아름다운 절경과 맛을 만났고
세상 어느곳에서 표시나지 않게 사랑을 펼치는 따뜻한 분들을 만나면서
내 뾰족한 모서리들을 깍아내고 갈아내고
그래서 조금은 동글동글한 성격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방송을 하면서
내 30대를 슬기롭게 이겨냈고
갈등과 번뇌 많았던 40대도 무난하게 이겨냈다.
견딜수 없는 고통의 시간도 방송때문에 이겨냈고
수술 후 링거줄을 매달고 방송을 한 기억이 있다.
그래서 이겨냈다.
그러면서 이겨냈다.
내가 소질이 아닌가보다라는갈등이 밀려올때면
그래도 내가 쓰일곳이 있어서 나를 쓰는 것이 아닐까 라는 오만으로도
내 스스로를 위안했다.
그랬다.
후배작가에게 말했다.
"맞아 그갈등...그럴수있어..하지만 그 갈등이 우리를 지켜내는 힘이 아닐까?
그 갈등이 없으면 눈부신 글발이 나올리 없지.
그 갈등때문에 우린 이를 물고 살아내는 것 아닐까...좀 더 견뎌봐..견뎌보자."
그냥 등을 한번 만져 주었다.
오늘 아침 그 후배작가가 햇살을 품고 나타났다.
그냥 웃었다.
말하지 않아도 그작가가 복잡한 심경을 정리하고 나왔다는 걸 안다.
후배작가가 섭외를 시작한다.
목소리가 상쾌하다.
그런데 또 한 후배작가가 말한다.
"선배님 이번 텀에 저 그만 둔다고 말했어요.~"
심장 한쪽이 벌렁인다.
우리~우리가 아직 쓸모있게 쓰여진다는 것~
우리 가슴속에 아직도 뽑아 낼 비단같은 실꾸리 감겨있기 때문아닐까?
그 명주실같은 글발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아무도 기억하지 않아도
아무도 돌아봐주지 않아도
클로징 멘트에 나가는 석자 내 이름을 위해
다시 노트북을 열어 자판을 힘차게 두드려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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