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시(詩)

미나리

비단모래 2007. 4. 18. 23:47

 

미나리

       금사 (錦沙) 

 

옥천 방아실 물가

백악관 횟집주인은

절반은 몸 담그고 봄 햇살 눈부셔 하는 미나리를

낫으로 쓱쓱 베어주며

파란 물이 든 손톱을 물에 헹구어냈다

 

낫이 스쳐 동강이가 난 미나리 대궁은

푸른시간을 뚝뚝 흘리며

얌전히

검은 비닐에 담겨 호흡을 숨죽였다

 

어찌 그런 향그런 하늘을 품었을까

어찌 그리 깨끗한 푸름을 키웠을까

 

머리짧은 주인남자 손등을 치달아 달리는

불거진 힘줄처럼 어찌 그리 싱싱할까

 

진흙속에서

몸살 나도록 헹구어 낸

푸른 피

 

탐욕스럽게

발을 빠뜨린 나는

어떤 날에 베어져야

섬뜩한 정직 밀어올릴까

 

미나리

날 줄기 베어물다

구멍 숭숭 뚫린 슬픔

갈아엎고

 

추억 삭제해 버린 눈동자 한 켠

흰 동공에 푸른 미나리 뿌리 이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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