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는 이야기

꽃이 피다

비단모래 2006. 1. 26. 10:17

 

 

 

왜 그렇게 아버지 홀로 계신 아파트는 넓고 정갈한 걸까?

어머니 계시지 않는 집 아닌것처럼 흐트러짐 없이 말갛게 정돈되어 있는걸까?

혼자 계신것이 표시나지 않도록, 혹시 우리가 찾아가면 불편하지 않도록

집을 가꾸고 계신 아버지의 마음처럼 의복도 참 깔끔하다.

 

어머니께서 장롱속에 차곡차곡 만들어 놓으신 아버지 한복.

 

참 그랬다.

어머니는 장롱속에 이불과 아버지의복을 차곡히 넣어두시는것을

자랑스러워 하시고 기뻐하셨다.

아파트에 사시면서도 솜이불 광목호청을  삶고 풀먹여 밟아 뽀송하게

꿰매놓으셨다.

며느리나 딸이가면 장롱문을 열어놓고 어머니의 이불을 자랑하곤 하셨다.

금빛공단 빛나는 이불이 켜켜이 쌓인 어머니 자개장롱은

어머니 보물 창고셨다.

가끔 집에서 잘 일이 있으면 그 이불을 내어주셨다.

매끈하고 보송하고 포근하던 어머니의 솜이불.

 

지금은 안주인 잃은 이불들이 흰눈처럼 포근하게도 쓸쓸하게도 보인다.

어머니 손길이 남아있어 그대로 두긴 하지만...

내가 나중 시골로 들어갈때 가져갈 예정이다.

 

선비이신 아버지가 집에서는 한복을 많이 입으시기에

하얀 동정이 깨끗하게 시침된 아버지 한복도

사시사철을 따라 정리되어 있었다.

어머니 편찮으시며 가장먼저 아버지 옷을 손질해 두셨다더니

어머니 가신지 석달이 되어가는데도 아버지의복은 늘 그대로

어머니 손길이 묻어있다.

어쩌면 저리 눈부실까 우리 아버지는 ....

 

티끌하나 없는 아버지의 아파트.

그 너른 거실이  조용하다.

 

어제저녁 아버지를 모시고 저녁식사를 하고 왔다.

자주 찾아가려 마음 먹지만 나름대로 바쁜 생활이 여의치 않다.

아버지는 소주 한병을 거뜬히 비우셨다.

 

"아버지..누가 아버지를 80으로 보겠어요...이제 육십 좀 넘으신것 같아요"

라고 말했더니 환하게 웃으신다.

"남들도 육십댓쯤으로 보더라..."

 

저녁식사를 마치고 아버지께 설을 보내실 용돈을 좀 드렸더니

아버지 품에서 봉투하나를 꺼내셨다.

"낼모레가 큰사위 생일이라서 애비가 마음을 좀 넣었다"

 

붓글씨로 사위의 생일을 축하하는 문구를 쓰신 흰봉투.

 

"喜 花開"

 

아버지의 변함없는 사위사랑

처음 만났을때부터 지금까지 큰 사위에 대한 믿음은 정말 각별하고

30년 가까이 변함없이 사랑하고 계시다.

 

아버지께서 애잔하게 사랑하신 딸

그 딸 때문에 아버지는 사위에게 더 사랑을 쏟으시는건 아닐까?

그딸 마음 아픈일 없도록 ...그래서 ..더.

 

"애비는 걱정하지 말아라. 조금도 힘들지 않게 살고 있느니

우리 딸이 너무 바빠서 걱정이지만 누구에게나 인정받고 있으니

마음 든든하고 무엇보다 가정을 잘 이끌어가서 고맙다"

 

 

 

다시 아버지를 혼자 두고 돌아왔다.

그 긴겨울 밤 그저 책과 벗하시며 돋보기를 높이시는 아버지

요즘 순한문 삼국지원본을 읽고 계시는데

"삼국지는 몇번을 읽어도 좋다"신다.

 

그런 쓸쓸한 아버지를 놓고....나는 돌아왔다.

 

아버지의 의자 / 정수라
  1. 그 옛날 아버지가 앉아있던 의자에
     이렇게 석고처럼 앉아 있으니
     즐거웠던 지난날에 모든 추억이
     내 가슴 깊이 밀려들어요
     언제였나요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아버지는 여기 앉아서
     사랑스런 손길로 나를 어루만지며
     정답게 말하셨죠
     그리울 때 이 의자에 앉아 있으면
     그 때 그 말씀이 들릴 듯 해요
   2. 이렇게 앉아 있는 나를 바라보시며
     어머니 눈시울은 젖어 있어요
     아버지는 의자 하나 남겨 놓은 채
     지금 그 어디로 떠나셨나요
     여기 앉아서 나는 꿈을 키워 왔어요
     아버지의 체온 속에서
     따스했던 말씀과 인자하신 미소를
     언제나 생각했죠
     그리울 때 이 의자에 앉아 있으면
     그 때 그 모습이 보일 듯 해요

'세상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버지의 세배돈  (0) 2006.01.29
오라이~~~스톱!!  (0) 2006.01.28
사랑합니다.----  (0) 2006.01.25
고독한 사랑-시낭송회원께  (0) 2006.01.24
다큐-영채의 겨울이야기  (0) 2006.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