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겸손하게 만드는 일
언제나 내가 우선 순위였다
맛있는 것도
아이들 보다
내가 먼저
남자 셋 속에 여자 하나의 대우
아이들도
자기들 먹을 과자 속에
내 꿀짱구나 맛동산이 들어있었고
아이스크림도 바밤바가 들어있었다
단팥빵이 들어 있어야했다
병원도 혼자는 가지않았다
당시 엄마가 방송작가 흔치 않았다
아내가 방송작가 흔치 않았다
그런데
한 가지
세남자 앞에서 겸손해 지는것이
있다
셋은 국립대학을 나왔고
나는 사립대학을 나왔다는 것이다
유일하게 남자들이 내게 큰 소리
치는 ᆢ
대학을 폄하해서가 아니라
학자금을 각자 알아서 내기로 하고
넷이 같이 대학을 다녔다ᆞ
용돈도 알아서 ᆢ
아이들은 피자판을 엄청닦았다고 ᆢ
0순위는 일어일문학과
일본어라곤,한마디도 못하고 고이비또요
노래 한 곡 부른다지만
나는 문예창작학과
옥타비아빠스 읽느라 고생했지만
큰 아들은 행정학과? 자치행정과?
잘 모름
작은아들은 공대 거쳐 나중 간호학과
하튼
셋은 100만원도 안되는
등록금을 내는데 나는 당시 430만원
그것도 일년에 두 번 ᆢ천 만원 가까운 돈을
작가 수입으로는 너무 벅찼다
더구나 두 아들 등록금은
0순위 회사에서 중학교때 부터 대학졸업
까지 나왔으니 0순위는 거저먹기로 등록금을 충당했다
거기다 아들들은 가끔 필요없는
장학생이 되기도 했지만
나는 장학생은 꿈도 못 꾸고
(며느리는 국립 법대를
대학원까지 전장 이었단다)
등록금을 낼 때 내가 힘들어 하자
큰 아들 유일하게 한마디
^그러니까 국립대 갔어야지요^
^야 ᆢ니들 낳고 기르고 돈 버느라
수능점수가 ᆢ^
그렇게 대학원까지
수 천 ᆢ
내 힘으로 ᆢ
고백하자면 절반은 아이들 모르게
0순위가 보탰지만 ᆢ
그러고 나니
통장이 텅 비었다
머리 속이 채워질 줄 알았는데
일하며 학교 다니느라
허둥대
가슴에 큰 구멍만 생겼다
시 쓰는 일이 더
두려워졌다
시는 공부가 아니라
삶으로 잣는 비단이므로 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