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는 이야기

1년

비단모래 2020. 4. 6. 08:08

 

 

#1년

 

코로나19로

석달 째

일상의 수레바퀴가

멈춤이라고

묵묵히 층층나무 한그루를 심던

0순위가 말했다

 

층층나무 흰 꽃이 눈부시게

계단처럼 피면 그 아래서

2020년 식목일을 기억하자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시간은 가고 오늘은 지나가고

기약없던 내일은 오늘이 된다

 

작년 4월5일 느닷없이 한 남자를

만났다

그리고 1년이 되었다

층층나무 같은 층층의 사연을 얹으며

그 남자와의 관계를 극히 일부만 아는

상황에서

한 남자와 1년을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인내력 이라 할까

 

일주일 이면 헤어지겠지

생각했던 인연

이젠 그를 어떻게 손을 놓을지

고민깊은 일흔의 남자

 

작년 식목일

장애인 복지관 팀장일을 하는 동생의

전화가 그 남자를 내가슴에

심게했다

 

^언니 ᆢ활동보조인 자격증 쓸 일이

생겼어 ㆍ급해 ㆍ그 분 지금 활동보조인이

그만둬서 ᆢ몸 불편한 분이 ㆍ

사람 구할 때 까지 일주일만 부탁해^

 

그 남자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한 쪽 몸 이 기울었고 혈압 ㆍ당뇨ㆍ

디스크 ㆍ심장에 스텐트를 3개나 박은

중증장애를 가진

홀로사는 수급자 였다

 

그는 사람을 믿지 않았다

왔다가 바람처럼 가 버리는ᆢ

 

^사람 구할 때 까지 일주일 용^

 

은 더더구나 눈길도 스치지

않았다

 

나는 무슨 일을 해야할 지도

몰랐다

집안일도 거의 0순위 손에 꾸려지는

판에 남의 집안일을 하는 것도

무섭고 그러고 무엇보다

몸이 ㆍ특히 얼굴에 웃음기 없는 남자랑

좁은 한공간에 단 10분도

숨 막혔다

 

0순위와 아들 며느리는

용돈을 더 줄테니 그 일은 하지

말라고 했다

나를 알기 때문이다

쓰레기 분리수거 조차 않하는 내가

몸 불편한 남자를 어찌 거둔다 할까

 

특히 며느리는 간곡히 마음 아파했다

공주할머니에겐 도저히 할 수 없는

며느리 부담을 더하는 일 이었다

 

그런데 무슨 인연일까

그에게 필요한 건 일이 아니었다

상처받은 마음의 위로였다

늘 떠나는 사람들의 뒷 모습이 아니라

다독이는 손길이었다

 

통할지 모르지만 내 시집을 한 권

주었다

책은 그냥 받는게 아니라며

만원을 극구 주었다

고맙다고 받고 무언가 사서

둘이 먹었다

 

누군가 같이 뭘 먹어주는 것도 그에겐

위로였다

늘 혼자 떨리는 손으로 먹던

식은 식탁이 쓸쓸했기 때문이었다

 

시낭송을 해주었다

그 남자는 가만히 들었다

 

그 남자가 웃은건 5개월이 지나서였다

 

^선생님 이런 일 않 하실 분 같은데

어떻게 여길 오셨어요^

 

작은 아들 이야기를 해줬다

아픈 아들 길러낸 이야기 ㆍ그 아들과

장애우 평등학교 봉사활동 다닌 이야기

요양보호사와 활동보조사

자격증 딴 이야기는 사람을 소중히

편견없이 바라본다는 걸 이해하게 했다

 

그러며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했다

베트남에서 사업한 이야기 ㆍ각 그랜져

탄 이야기 ㆍ이혼하고 혼자 된 이야기

자신을 스쳐간 여자들 이야기

쓰러져 몸이 이렇게 된 이야기

한 남자의 70생애를 오래오래

공감하며 들었다

 

^선생님 ㆍ다른 사람 하고

달라요ㆍ마음이 통해요

일은 못하지만 ᆢ하하 ^

 

^일 못하면 ㆍ복지관 얘기해서

바꿔달라 하셔요^

 

^아녀요

저 죽을 때 까지 선생님 안바꿔요^

 

^아니 ᆢ 그 때 까지 있으라고요?^

 

그러며 이렇게 다시 한 번 식목일을

맞았다

이제 우리집에서도 나를 더

대단하게 보고 있다

 

한 남자를 마음에 심고 사는 여자

그 나무가 쓰러지지 않게 지탱해줘야

하고 바람막이가 돼야 하는 여자

 

우리 집에서는 상상도 할 수없이

나를 내려놓고 1년을 살아온 여자

그 대가로 국가에서 월급을 받고

의료보험료를 내는 여자

 

방송작가 ㆍ시인 ㆍ시낭송가

이런 직함보다

때론 훨씬 의미있는 삶을 심는 여지

그 일년

 

앞으로 얼마를 갈지는 나도 모른다

앞날은 아무도 모르니 ᆢ

 

그러나 일주일만 ᆢ에서

1년의 시간을 넘어 나자신도

나를 놀라워하고 있으니

 

삶은 역시 진지한 기도 아닐까?

 

 

 

 

 

1년

365일

8,760시간

525,600분

31,536,00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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