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는 이야기

며느리

비단모래 2020. 1. 23. 14:24

 

 

#8남매 맏며느리의 며느리

 

결혼하고 마흔 한 번째

설이 다가온다

 

스물 두 살 어린 나이에

그것도 8남매 맏며느리로 시집 간다하니

친정어머니는 펄쩍 뛰셨다

당신은 3대 외독신 며느리로 살아오신

때문인지

8남매를 가늠하지 못하셨다

 

^엄마 우리집보다 둘 더 많은데

뭐가 많다고 해요^

 

내 말에 더 기 막히신 어머니는

저 철없는 것이 감당해야할

인생의 무게를 이미 알고 계셨으리라

 

그렇게 나는 시골집 맏며느리로는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8남매 맏며느리가

되었다

 

결혼은 연애시절의 달콤함이 아니고

전투였다

막내시누이가 초등학교 1학년

제사숭배를 하시는 향교에 다니시는

시아버님

 

고추농사 벼농사

밭농사를 거의 책임지시는 시어머님

 

소설책에 나오는 보랏빛이 아니었고

안개꽃을 가슴에 앉는 환상이 아니었고

어금니를 물어야했고

눈물로 진주를 만들어야했다

 

왼전한 내 편이 되었다가

간간 집 편이 되는 중간역할을 해야하는

부모님께 아니오 소리를 절대 못하고

예 만 해야한

0순위의 고단함도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더구나 시골집 맏며느리의 유약함은

아버님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화살을 맞는 기분이었다

 

고추 못 따지 ㆍ호미질 못하지

깨 ㆍ콩 도리깨질 못하지

옆집 며느리 처럼 지게 못지지ᆢ

 

일은 못해도 부모님과 명절을 쇠고오면

파김치가 되었다

팽팽한 스트레스 줄이 툭 끊어져 흐물거리고 사나흘 앓았다

 

그래도 아무말 없이 잘 견뎌쥐서

고맙다고 손잡던 0순위의 눈빛이

약이 되었던 때도 있었다

 

시동생들이 결혼하며

동서들이 넷이나 생겼다

다행이 동서들이 시골일을 잘해서

나의 허물이 덮히기 시작했다

 

바로 아랫동서는

^형님은 곁에만 있어요

내가 다할게^

하며 나의 허물을 애써 덮었고

친구처럼 다정해서 나는 아랫동서들을

잘 품으면 되었다

 

^알았어 형님^

 

어떻게 내 동서들은 내말에 무조건

수긍하고 따라주었을까

그런 동서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고

나는 오래 울었고 오래 아팠고

지금도 외롭다

 

나머지 동서들이

내게 있어 위안이고 친구다

 

내 아들이 대학교 1학년 때 만난 2년선배와

9년을 연애하고 결혼했다

 

군대를 보내며 같이 울고

같이 면회를 다니고

같이 여행을 다녔다

 

그리고 같은 아파트 뒷동에 살며

수시로 드나들고 현관문을 같은 비번을

쓰고있다

 

대학원 석ㆍ박까지

법을 전공한 며느리는 칼칼하고

이성적이고 깔끔해

무디고 감성적이고 좀 헛점투성이인

나와 묘하게 맞는다

 

오늘 아침 벌써 설 장을 봐다 놓았다

 

^아이 학교보내고 아침 일찍 갔더니 주차도 편했어요^

 

8남매 장손 며느리는

뭘 사야하는지를 이미 통달해

냉장고에 넣을것 냉동실에 넣을것을

분류해놓고

내일 시골에 들어올 때 사올 목록을

소상히 내게 말해준다

 

^어쩌니ᆢ이런 시어머니 또 있을지 몰라

명절 돌아와도 이렇게 편한ᆢ^

 

^제가 장보는 게 취미잖아요^

 

로 웃어넘기는 며느리에게ᆢ주려고

나는 지금 세뱃돈 봉투를 쓰고있다

 

동서들 봉투랑 아들 손자 봉투까지ᆢ

 

고맙고 사랑한다고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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