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시(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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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모래 2014. 7. 11. 14:50

신록 - 서정주

 

어이 할꺼나

아,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남몰래 혼자서 사랑을 가졌어라

 

천지엔 이미 꽃잎이 지고

새로운 녹음이 다시 돋아나

또 한 번 날 에워싸는데

 

못견디게 서러운 몸짓을 하며

붉은 꽃잎은 떨어져 내려

펄펄펄 펄펄펄 떨어져 내려

 

신라 가시내의 숨결과 같은

신라 가시내의 머리털과 같은

 

풀밭에 바람속에 떨어져내려

올해도 내 앞에 흩날리는데

부르르 떨며 흩날리는데

 

아,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꾀꼬리처럼 울지도 못할

기찬 사랑을 혼자서 가졌어라.

 

 

 

 

 

 

 

 

 

 

간절하다 / 이재무

 

삶에서 '간절'이 빠져나간 뒤

사내는 갑자기 늙기시작하였다

활어가 품은 알같이 우글거리던

그 많던 '간절'을 누가 다 먹어치웠나

'간절'이 빠져나간 뒤

몸 쉬 달아오르지 않는다

달아오르지 않으므로 절실하지 않고

절실하지 않으므로 지성을 다할 수 없다

 

여생을 나무토막처럼 살 수는 없는 일

사내는 '간절'을 찾아 나선다

공같이 튀는 탄력을 다시 살아야 한다

 

 

 

 

 

 

 

 

 

 

 

 

 

 

 

여백-도종환

 

언덕 위에 줄지어 선 나무들이 아름다운 건

나무 뒤에서 말없이

나무들을 받아 안고 있는 여백 때문이다

 

 

나뭇가지들이 살아온 길과 세세한 잔가지

하나하나의 흔들림까지 다 보여주는

넉넉한 허공 때문이다

 

빽빽한 숲에서 보이지 않는

나뭇가지들끼리의 균형

가장 자연스럽게 뻗어 있는 생명의 손가락을

일일이 쓰다듬어주고 있는 빈 하늘 때문이다

 

 

여백이 없는 풍경은 아름답지 않다

비어 있는 곳이 없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

여백을 가장 든든한 배경으로 삼을 줄 모르는 사람은

 

 

 

 

 

 

 

 

 

연리지 (連理枝)

황봉학

 

손 한번 맞닿은 죄로 당신을 사랑하기 시작하여

송두리째 나의 전부를 당신에게 걸었습니다

이제 떼어놓으려 해도 떼어놓을 수 없는 당신과 나는

한 뿌리 한 줄기 한 잎사귀로 숨을 쉬는

연리지(連理枝)입니다

 

단지 입술 한번 맞닿은 죄로

나의 가슴 전부를 당신으로 채워버려

당신 아닌 그 무엇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는

몸도 마음도 당신과 하나가 되어버려

당신에게만 나의 마음을 주는

연리지(連理枝)입니다

 

주어버린 죄로 이 몸 당신에게

이제 한 몸뚱어리가 되어 당신에게서 피를 받고

나 또한 당신에게 피를 나누어주는

어느 한 몸 죽더라도 그 고통 함께 느끼는

연리지(連理枝)입니다

 

이 세상 따로 태어나

그 인연 어디에서 왔기에

두 몸이 함께 만나 한 몸이 되었을까요

이 몸 살아가는 이유가 당신이라 하렵니다

당신의 체온으로 이 몸 살아간다 하렵니다

당신과 한 몸으로 살아가는 이 행복

진정 아름답다 하렵니다.

출처 : 금사(錦沙)시낭송.스피치 힐링&조이 아카데미
글쓴이 : silkjewel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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