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는 이야기

서리꽃-여자의 일생

비단모래 2009. 1. 15. 22:23

 

 고향을 들어설 때 다리건너 첫집 흥만삼촌네 집앞에는 아주 조그만 툇마루가 하나 놓여있다.

그 퇴마루에는 아주 자그만한

온몸에 물기라고는 다 빠져나간 공처럼 동근 등을 지고 앉아계시던

흥만삼촌 어머니... 시어머니 사촌동생이 되어 남편에게는 삼촌으로 불렸고...

그 조그만 할머니가 엊그제 96세로 세상을 떠나셨다. 

사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는 여자였던 할머니

하나 남은 앞니가 송곳처럼 솟아나와 무섭던 할머니...그 할머니가

올들어 가장 매운 날씨에 매운 여자의 일생을 마감하셨다.

남편과 나는 어젯밤 문상을 갔다가 나는 방송때문에 밤길에 나오고

남편은 장례지내는 것을 본 뒤...오늘 나오는 길에 독하게 매운 추위에 서리꽃이 핀 산이

신비롭다고 찍어와 내게 내밀었다.

 아흔여섯해를 사시며

이세상의 칠난팔고는 다 짊어지신 할머니

좋은 일이라고는 아들 낳던날 외에는 없으셨다는 할머니

젊어서 남편은 술독에 빠져 살았고 버럭 버럭 소리지르며 속을 긁어냈고

큰 아들을 먼저 떠내보내는 참척의 시간을 보냈고

거기다 딸마저 암으로 보냈고 사위를 보냈고...

그러면 할머니는 몸에 있는 물기를 모두 쏟아냈셨다.

 서릿발같은 세상에서

자식을 먼저 보내는 아픔을 겪으면서도

고추밭을 맸고 호미질은 끝나지 않았다.

 

참 다행인것은 막내아들과 막내며느리와 함께 살아

평생 며느리 손에 밥을 드실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막내아들이 이장을 하고 어찌하든 먹고 살려고 애쓰는 사람이라

밥은 해결하고 살았다

 

할머니는 툇마루에 나와 앉아

어디를 내다보고 사셨을까...

 이렇게 매운날 할머니는 찬 땅속으로 가셨다.

흙의 온기가

이세상을 살아내며 겪었던 아픔을 덮어냈을까?

아주 자그만한 그 몸을

잘 덮어줬을까?

 여자

참으로 슬픈 여자의 길을 걸어온 할머니

웃는 모습을 보지 못했던 할머니

아들 딸을 먼저 보내고

웃음을 거둔 할머니

그 여자의 삶이 아흔여섯의 길에서 멈추었다.

하늘의 맹위가 시퍼렇다

아니 파랗게 얼어있다. 

 남편은 집에 돌아와 한마디 했다.

"아버님...딱해서..."

"왜?"

"새벽에 끙끙 앓으시대...엊저녁 술을 무지 드시더만...

술좀 그만 드시라고 하고 싶어도 나중에 걸릴까봐...못하고..."

 

"좀 적게 드셔야지 술 때문에 편찮으시기라도 하면...."

 

나는 참 못된 며느리였다.

진정 그분이 편찮으실까봐 걱정이 아니라 편찮으셔서 내게 지워질 짐이

더 걱정 된것은 아닌지...

 

이제 여든 둘이 되시는 늙은 아버지를 놓고 나오는 남편의 마음에도

이렇게 서리꽃이 피었을텐데

따뜻이 녹이지 못하고

툭 하고 찌르고 말았으니...

 나는 오늘도 아는 분이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장례식장에 있는데 문자가 왔다.

또 아는 분의 시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문자다.

 

왠일이야...

 

겨울...몸이 굳고 뼈가 굳는 겨울

목숨마저 부러지고 있다.

나에게 남아계신 두분의 아버지.

친정아버지와 시아버님...

 

이별의 시간이 점점 가까워오고 ...

나는

무심히 서리꽃에 마음 찔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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