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는 이야기

한성,규정 결혼 축시

비단모래 2008. 6. 20. 09:29

漢城.圭晶

                            惰正 李淸茂

 

고 고 저 저 고 고 저

宿採于乾造漢城 (수채우건조한성)

저 저 고 고 고 저 저

天凰鳳逑授圭晶 (천황봉구수규정)

저 저 고 고 저 저 고

連枝互異猶思美 (연지호이유사미)

고 고 저 저 고 고 저

啐啄偕調愛滿瀛 (줄탁해조애만영)

하늘에서 별을 캐다가 은한으로 휘감은

아름다운 성을 만드노니

 

천제께서 봉과 황을 배필로 삼으신다는

수정신표를 내려주시누나

 

화락한 부부는 서로의 다른점을 오히려

아름다움으로 생각하나니

 

줄탁을 함께 맞추어 저 큰 바다를 사랑의 물로

가득 채우는구나(채우려므나)

 

庚 ( 城 晶 瀛)

 

連枝 = 連理枝 (두 나무의 가지가 맞닿아서 결이 서로 통한 것)

* 화목한 부부의 별칭

啐啄同時

1) 줄과 탁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성취의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는 의미

啐 : 부화 시 병아리가 알속에서 신호를 보내는 모양

啄 : 어미닭이 그 순간에 알을 깨뜨리는 행위

 

2) 두 사람의 대화가 서로 상응하는 일

 

 

아이들의 결혼이 한달 남았다.

여러가지 복잡한 일도 있지만 좋은 일이니 서로 마음 상하지 말고

 간소하게 준비하기로 했다.

 

그중에서 가장 신경쓰이는 일이 그날 두 아이들을 위한

가장 정성스런 축복의 날로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이다.

형식적이 아니 결혼,

평생을 살아가는 일을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온 마음을 다해 축복의 날이 되기를

 

아이들과 충분히 상의를 하고 사돈어른들과도 논의를 한후

좀 색다른 결혼을 준비하고 싶었다.

아무래도 오랜기간 구성작가로 일했으니

방송을 하면서도 늘 색다른 방송을 하고 싶어서 단 한가지라도

특별한 구성을 신경써 왔던 세월이었다.

물론 그때마다 드러나는 일도 아니었고 어느때보면 오히려 더

튀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지나고 나면 늘 한걸음 앞서 왔다는

평을 받았다.

물론 아이들의 결혼이니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생각해야 하지만

평가는 또 나누어지리라 본다.

 

다른 사람 하는대로 하지 뭘 그렇게...

아...역시 구성작가 엄마라 다르네...란 평가.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엄마니까 아이들을 위해 충분한 정성을 들여

배려하고 생각하고 의논해서 만들어 보리라.

 

한문 선생님이 이신 작은오빠, 아이들의 외삼촌께 아이들의 결혼축시를 부탁했다.

물론 이시는 아이들의 이모(시낭송대회에서 대상 수상)가 낭송 할 것이다.

 

큰 아이를 임신 했을때 내가 늘 주문한 것이 있다.

 

"아가야...모습은 멋진 아빠를 닮고, 생각은 큰외삼촌을 닮고,

행동은 작은외삼촌을 닮고,샤프함은 막내외삼촌을 닮고, 부드러움은 엄마를 닮고,

이웃에게 넉넉한 시골할아버지를 닮고, 또 신중한 삼촌을 닮고..."

 

내 뱃속에서 나와 탯줄이 연결되어 있는 동안

내가 외웠던 주문이다.

 

아이들의 결혼축시를 작은오빠에게 부탁한건 특별한 이유가 있다.

내 작은 오빠...

고단한 세상을 살아오면서도 마음 넉넉하고 결단있고 그리고 끈기있고

가슴에 사랑을 가득 품은 사람이다.

 

어려움을 딛고 일어나는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다.

 

동생들을 사랑하고 아버지께 지극한 효성을 보이는 사람이다.

두살위인 큰오빠, 그러니까 두 살 더 먹은 형에게 아직까지

반말 한 번 하지 않은 사람이다.

선비이신 아버지의 길을 따르고자

사회선생님에서 한문선생님으로 교직을 바꾸면서 기쁘게 공부한 사람이다.

특별히 나를, 나의 아픈 시절을 함께 나누며, 나와 동병상련의 아픔을 겪으며

지극히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작은오빠는 중.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마쳐야했다.초등학교 졸업도 끝내지 못한

겨울방학부터 가족의 생계를 등에 져야 했다.

어느 정도 기술자가 된 스무살 무렵, 작은오빠가 공부를 시작한 것은 단순�다.

여기 저기 써 있는 영어를 읽고 싶은 열망,

그리고 서울법대를 들어간 형이 나중에 잘 되었을 때

동생이 초등학교 출신 이란 것이 누가 되지 않게 하기위해서...

 

(큰 오빠는 우리들에게 늘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생활의 궁핍함을 이기는 일은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니,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공부를 중단하지 말라고...큰 오빠...경기고등학교에 합격해 서울로 가면서

3000원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후 대학을 졸업할 때 까지

큰 오빠는 오히려 집에 돈을 보내며 동생들을 보살폈다...단 한번도 화내고 짜증내고

큰 소리내는 것을 보지 못한 큰 오빠, 우리집의 든든한 중심이다.)

 

 

작은오빠의 공부는 그렇게 시작 되었고 늑막염이 걸려 얼굴이 누렇게 되었을때도

중단하지 않았다.

그 오빠가 중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거쳐

사대에 합격했고, 사대 대학원을 나와 석사가 되었고

그리고 고등학교 선생님 발령을 받아 멋진 선생님으로 출발을 했다.

물론 다른 사람보다는 훨씬 늦은 나이였지만 오빠는 멋진 선생님이 되었다.

 

작은오빠는 내가 걸어가는 길을 무척  기뻐하는 내 마음의 후원자다.

내가 시집을 내놓았을때도, 방송작가가 되었을때도,공부를 시작했을때도

많이 기뻐하고 든든한 마음을 보내주었다.

 

내가 결혼하고 첫아이를 유산 하던 날,오빠는 시장에 가서 기저귀 감을

사가지고 병원으로 달려왔었다. �지않았다. 그날을...

태어난지 한달 밖에 되지 않은 작은아이가 급성골수염에 걸려 수술을 해야했을때

묵직한 돼지저금통을 들고 달려왔었다. 잊지않았다. 그날을...

 

오빠가 사 주던 자장면...오빠가 만들어 준 치마...

오빠가 사 주던 소나무집 칼국수..중학교 입학을 포기한 어린 동생에게

호떡을 사 주던 그 밤...울면서 오빠와 호떡을 먹었던 그 밤을 잊지 않았다.

나 보다 두살 더 먹은  작은 오빠는 나보다 스무살은 더 먹은 것처럼

나를 마음아파했다.

 

그런 오빠...

그 오빠가 여동생의 큰 아들, 큰 조카를 결혼시키는데

얼마나 마음 벅차하는지...

 

정성을 다해 시를 지었을 작은오빠의 모습이 생각나 마음 뭉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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