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ᆢ방송 실수담 책 내야 할까?(1편)
방송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끝없는 방송 이야기
그 중에서도 실수담을 듣는것은
정말정말 재미있다
밖에 있는 사람들 청취자나 시청자는
모르겠지만 그 안의 사람들은
등줄기가 서늘하다
녹음이나 녹화는 감쪽같이 편집하면
되겠지만 그야말로 쌩이면
죽음이다
갑자기 웃음이 나온다든가
기침이 나온다던가
목이 막힌다던가
가래가 목을 막는다던가
딸꾹질ㆍ배아픔
생리현상
별별일들이 방송을 위협한다
지나고 나면 배꼽 빼는
추억담이지만
현실은 눈물 쏙 빼는 시말서
질책ㆍ견딜 수없는 자괴감에
이 길이 아닌가에 시달리게 된다
나 같은 방송작가는 어떤 실수를 할까
잊지못 할
세가지 실수가 나는 뼈 아프다
지금은 웃지만ᆢᆢ
첫 번째 실수는 작가 초보시절
그야말로 맨땅을 구르던 시절이었다
방송아카데미를 다닌것도 아니고
살림만 하던 주부 12년차
큰아이 6학년 때 방송작가가 뭔지도 모르고 시작 된 가을 개편 프로그램
^신바람 오후 3시^는 초보작가에게 청취율
대박행진을 안겨주었다
이건 대본을 잘 써서가 아니라
베테랑엠씨덕
베테랑피디덕
베테랑리포터 덕 이었다
라디오차장님의 입은
귀에 걸렸고
적당한 당근과 채찍이 교차했다
일주일만 하고 그만 두려던 방송작가
내 길이 아닌가 하고 헤메던 길에서
이 길이 내 길인가 싶었고
방송작가라는 달콤함이 적당하게
맛들어 가고 있었다
더구나 큰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한 학교가
신설 중학교였는데 어찌된 일인지
입학해 학생회장이 되었다
나는 초대학생회장 엄마이자
어머니 회장이 되었지만
^학생회장 엄마는 방송작가^라서
대다수의 일에 제외될 수 있었다ㆍ
그 당시는 방송대본을 손으로 쓰던
때였다
방송로고가 인쇄된 원고지에
하루 15장 이상 두 시간 용
대본을 일요일 까지 써야했다
물론 일요일은 녹음이고 토요일까지
생방송 이었다
늘 펜혹으로 가운데 손가락은
욱신 거렸고
쓰다틀리면 원고지를
오려붙이기도 했다
얼마 후 화이트라는게 나왔을 땐
만세를 부르기도 했다
그 날은 수요일 분을 녹음 하기로했다
엠시의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피디가 대신 방송하기로 해
아무래도 생 방송은 좀
무리라고 느꼈고 녹음해놓고
엠시네 상가에 함께 가기로 했다
녹음은 순조롭게 이어졌다
마지막 코너 그리운 어머니만 남았다
엠시가 리드멘트를 읽고
청취자가 어머니께 드리는 편지를
읽고 그 어머니를 연결해
눈물바다를 이루는 코너였다
나는 이코너가 참 좋았고
세상 어머니들의 마음
세상 아들 딸의 마을을 읽을 수 있어
늘 뭉클해 같이 웃고 같이 울었다
배경음악이 나가고
피디는 목소리를 깔고 리드멘트를
읽기 시작했다
굵은 바리톤 목소리가 좋았다
어머니 ᆢ어머니ᆢ어머니ᆢ
하다
피디 엠시는 그 묵직한 공기를 깨고
웃음이 터졌다
웃음은 그치지 않았고
한참 후 스튜디오 문이 열렸다
^작가님ᆢ이 작가ᆢ
나 못해 ᆢ^
그가 내민 원고에는
가지많은 나무에는 ᆢ
가자 ㄱ에 점하나 잘못 찍어 ㅈ이 쓰여있었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를 찍으면
남이되는 인생사ᆢ
이런 노래가 있지만
이 사건은 넘 치명타였다
그게 왜 내 눈에는 안 보였을까
^그래 ᆢ뭐가 많다구? 그래 이작가네
남자 많은거 알어 ᆢ^
어찌어찌해 녹음은 마쳤지만
그후나는 0지많은 작가가 되어 있었고
만나는 피디마다
^이작가 0지 많다고?^
이 사건은 그 후 후배작가가 들어와
교육하는 자리에서
어김없이 회자되었고
후배작가들은 나를 보고 선배님의
영웅적 실패담에
슬몃 웃었다
아직도 그 방송국엔
그 사건은 공중을 떠돌아
어느 엠시가 책을 냈는데
아뿔싸
그 대목이 들어 있었다
지금은 이렇게 웃으며
20 여년전의 일을 기억하지만
당시 고개를 들 수 없도록 민망했던
한 글자의
치명적 실 수
가 자와 자 자가 이렇게 큰 울림이
있다는 건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실수란 결코 큰 바위덩이가 아니라
모래알 하나가
인생을
아프게 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은 그날의 일은
아직도 나를 화끈거리게 한다
그렇게 회오리 바람의 고역을 치르고 나는 라디오방송의
전성시대를 맞는다
93대전 엑스포를 맞아 엑스포 다리가 건설되는 현장에서
공개방송을 필두로 엑스포 기간에는 한빛탚옆에 마련된
라디오부스에서 생방송을 하는 바람에 엑스포장을
패드워드로 드나들었고
엑스포 도우미들을 초대해 방송하고 리포터를 연결해
각 부스를 소개하고
중앙방송에 우리리포터를 연결하는 코너를
하기도 하며
93일 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이면우박사가 그 당시 국민들이 다시
신바람을 일으켜야한다고 신바람 운동을 주장한 계기로
만든 신바람오후3시는 나의 처사랑 같은 방송이었다
히트를 친 신바람 오후3시는
나를 방송작가로 우뚝 서게했고 인정받는 작가로
명함을 내밀게 했다
수시로 밀려오는 소소한 실수들
작가의 실수는 엠시가 막고
엠시의 실수는 피디가 막고
피디의 실수는 엔지니어가 막고
서로서로 팀웍을 이루며 돌아가고 있었다
팀끼리 가족같은 우정
우정보다 센 사랑도 느끼며
같이 밥먹고 뭉쳐다니고 회의하며
머리대고 코너를 짜며 단단한 성벽을 이루어 갔다
참 많은 공개방송을 해냈고
참 많은 가수들
사람들을 만났다
봄이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 겨울이가고
또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가을오고
겨울오고
프리래서에게 개편이라는 두려운 지옥속을 거쳐 천국을
맛보았다
6개월에 한 번씩 있는 개편
피를 말린다
프로그램이 없어지기도 하고
작가 피디 엠시의 변동이 있기도 하며
늘 생경한 벌판에 다시 떨어져야한다
나는 라디오를 다 섭렵했다
저녁 프로그램으로 가서 저녁마다
칼럼 한 편씩을 쓰던 입술타던 시간도 있었고
피디가 늘 술취해있어 나와 엔지니어 둘이 그방송을하며
내가 엠시에게 큐를 주어야 했던 웃지 못할 상황
지금같으면 어림도 없을 그 상황도 용납되었다
그때 엠시를 하시던 아나운서국장님
참 따뜻하시고 점잖고 배려많으셨던걸로 기억된다
그분의 격려로 어려움을 견딘적이 있으니까ᆢ
그러다 맡은 별이 빛나는 밤에ᆢ
정말 나와 맞지 않았다
남녀 엠시들은 나와 환상으로 맞았지만
청소년을 이해하는데는 너무 엄마였다
머리를 물들이고 청바지를 찢어입고 오는 가수들에게
부모님이 아무말도 안하시냐고 묻질않나
친구랑 하워서 고민이다
여자친구랑 허어졌다는
중학생들의 편지에 공부하란 답을 보냈다
공감을 안해줬고
내 애들 처럼 걱정했다
밤 12시에 퇴근 하는것도 불편했고
어린 가수들이 공부는 안하고 노래하는 것이 걱정이고ᆢ
하지만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는 최고의 엄마가
될 수 있었다
당시 최고의 가수들 싸인을 받아다 줄 수있었고
공개방송을 보여줄 수 있었고
간혹 무대에 세울 수도 있었다
그리고 별밤 뽐내기 코너 노래부르는 시간에
학생들이 펑크를 내면 우리 아들들이 갑자기 연결해서
막았다
성도 바꾸고 이름도 바꿔가며 엄마의 진땀나는
시간에 합류해 함께 흘러갔다
작은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할 때는 새학년 새학기
청소년 공개방송에 무대에 초대되어
가수들과 함께 방송하는 시간도 가졌다
방송작가 엄마를 가진 아들의 보람이었고 역시 버벅대지
않고 말도 잘 하는 훈련된 학생이었고
수험생 인터뷰도 큰아들이 했다
이렇게 우리는 라디오가족으로 흘러갔다
정말
별이 빛나는 밤에는 우리 아들들만 좋아하고
엄마는 괴로웠던 프로그램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방송작가였으므로
맡은 임무까지는 잘 해냈다
리디오를 사랑하시고 나를 격려해주시던
끼가 있다고 칭찬해주신 라디오부장님이 돌아가셨을때는
우리는 산소안에 그분이 쓰시던 안경과 라디오를
넣어드렸다
또 프로그램은 개편되었고
나는 여성시대를 맡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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