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는 이야기

잊지않기 위해서

비단모래 2016. 3. 9. 11:51

 

얼굴에 몇 개의 뾰루지같은 것이 났다고 신경쓰여 하니까

작은아들이 근무하는 병원 피부과에 아침 9시예약을 잡아주었다.

대충 준비를 하고 시동을 걸었다.

아들 병원을 어느쪽으로 가더라?

심호흡을 하고 노선을 머릿속에 그렸다.

20여년 늘 내가 다니던 회사앞길을 건너 다리를 지나면 있을거야 라고 생각하고

내비아가씨를 불러냈다.

 

그리곤 무심코 가는데

내가 머릿속에 그렸던 길이 아니다.

 

갑자기 혼선이 왔다.

 

얼마전 모 경찰서를 찾아가는데도

길이 아득했었고

몇년전은 늘 다니던 길에서도 집에 오는 길이 아득했었다.

 

이게 무슨일이람..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차를 세우고 찬찬히 병원노선을 그렸다.

아...

이쪽이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길은 어디든 통하게 마련이고 잘 못 찾았으면 유턴해서 가면그만인데

그때부터 나는 머릿속에 복잡해졌다.

 

그리고 도통 내비아가씨가 알려주는 길로 가는 것 같은데도

영 익숙한 길이 나오지 않았다.

 

한참 헤메는데 저쪽으로 병원의 이름이 보였다.

20분도 안걸릴 곳을 40여분이 걸렸다.

거기서 끝났으면 좋으련만

지하주차장으로 가는 길을 잘 못찾아 돌면 다시 정문..

급기야 병원 앞에서 길 안내하시는 분께

도움을 요청했더니

차 앞으로 와서 수신호로 지하주차장 입구까지 안내해 주셨다.

 

진료를 마치고 시술을 하는데 아들이 내려왔다.

아들에게 이차저차 했다고 얘기하니

그럼 신경과 검진을 받아보라고 했다.

기억력 검사도 해보고...

 

치매라면 어쩌게..

그러다 아들을 몰라보고 아저씨라 하면 어쩌게..

나 시낭송 열심히 하고 있는데...

이거 다 너 때문에 그래...

 

아들에게 못 박는 소리를 하고 말았다.

 

그러고 갑자기 심각해지니

아들이 점점 기억력이 감퇴되는 나이니 너무 걱정말라고 한다.

그러나 검사는 필요하다고..

 

그래 좀 생각해 보고 할게 하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은 익숙했다.

그런데 기분이 가라앉은건 사실이다.

 

참 기억력이 좋았다.

남편말에 의하면 남편에게 서운했던 일은 수십년이 지나도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한다고..놀랍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자꾸 잊어버린다.

누구에게나 망각의 지우개가 있고

참 다행인것은 망각의 능력이 있어 생각이 터지지 않고 살아가는 것인데

이상하게 치매의 두려움을 걱정 할 나이가 되었다.

 

내 머릿속의 기억력이 지워져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면.

 

그래서 얼른 시한 편을 생각에서 꺼냈다.

잊지않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