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는 이야기

겨울꽃이 피어나면..

비단모래 2015. 1. 22. 12:27

꿈속의 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진 천리향 꽃이 피었습니다.

그것도 한기가 가시지 않는 베란다 구석에서

눈길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간혹 주인여자가 퍼다주는 찬물을 들이키는게 전부인 시간을 견디고

천리를 간다는 향을 가지고 겨울속에 꽃이 피었습니다.

 

주인여자는 그렇게 다정한 여자도 아니고 꽃에게 눈을 자주 맞추는 살가운 여자도 아니지만

천리향은 주인여자에게 눈을 맞추며 그 향기로 주인여자의 마음을 끌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겨울절기 대한도 지났습니다.

겨울을 견디고 살아내고 희망을 꿈꾸는 계절이라 하더니

천리향은 견디고 살아내더니 꿈속의 사랑을 피워냈습니다.

 

하늘을 이고사는 아파트 13층

이향기가 하늘에 닿기를 바랍니다.

그리운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불러보고 싶은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일이 있을 때 간절하게 생각나고

아플 때 더 간절히 생각나는 이름입니다.

어젯밤 천리향 주인여자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주인여자랑 같이사는 남편이 한달째 기침으로 시달렸습니다.

천리향 주인여자는 참 이상하게 자신은 늘 골골 아프고

하다못해 손목까지 부러져 남편을 놀라게 하면서도

남편이 아프다고 하면 짜증이 납니다.

 

아니 짜증이 아니라 뭘 어떻게 해야할 지 몰라서

그냥 두렵습니다.

 

 아프지 말라고

기침 좀 그만하라고

한마디 뱉습니다.

쿨럭이는 기침소리가 속을 파헤치기 때문입니다.

얼마전 보았던 님아 그강을 건너지 마오에서

할아버지의 기침소리가 한동안 떠나지 않았습니다.

 

쿨럭이며 가슴장을 헤집는 기침소리

엊저녁 다시 한 번 화살을 쏘고 말았습니다.

 

기침 좀 참어..남편이라고 어떻게 기대고 살겠어...

 

압니다.

사랑과 가난 기침은 감출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뭐..일부로 기침을 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본인도 참 괴롭다는 것을..

 

그러면서도 천리향 주인여자는 돌아눕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엊저녁 화살을 쏘았는데도

남편은 천리향 주인여자에게 아침상을 차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점심 따뜻하게 먹으라는 당부를 하고 나갔습니다.

 

말 해주고 싶었습니다.

실은 그대가 아파서 그런게 아니라 내자신에 대한 짜증이었다고..

 

자꾸만 내려가는 통장 잔고와

두달 가까이 사서 고생하는 깁스

무료한 시간속의 두려움

이런 것들 때문에 그냥 말의 방향이 그 쪽으로 향했다고...

 

그러나 그 말을 하지못하고

서성대며 베란다로 나갔습니다.

겨울을 이겨내며 애쓰게 꽃대를 밀어올리는 천리향을 보았습니다.

그저 뭉퉁한 몸둥어리를 수반에 박고 뿌리내린 행운목을 보았습니다.

 

그 척박한 환경에서 꽃 피워낸 모습을 보면서 나를 다독입니다.

 

 

 

그러며 이제 내가 꽃 필 차례 임을 압니다.

긴 겨울을 지냈으니 겨울동안 만든 꽃잎이 피어날 것입니다.

 

내 앞에 봄이 있기 때문입니다.

절망스러울 때 아플 때 주문처럼 외우는 시 한 편

마음에 들여놓고 꽃잎을 빚습니다.

 

그대 앞에 봄이 있다.

   김종해

 

우리 살아가는 일 속에

파도치는 날 바람부는 날이

 어디 한두 번이라

 

그런 날은 조용히 닿을 내리고

오늘 일을 잠시라도

낮은 곳에 묻어두어야 한다

 

우리 사랑하는 일 또한 그 같아

파도치는 날 바람부는 날은

높은 파도를 타지 않고

낮게 낮게 밀물져야 한다

 

사랑하는 이여

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

'세상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월 첫 날  (0) 2015.02.01
효자손이 효자네  (0) 2015.01.25
별빛으로 다가온 기쁨  (0) 2015.01.22
[스크랩] 비단모래 작사 정의송작곡 정동진  (0) 2015.01.19
[스크랩] 11회 진안문학상 시상식  (0) 2015.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