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시(詩)

[스크랩] 겨울새벽의 시-정일근

비단모래 2014. 10. 17. 12:02

겨울 새벽의 시
           정일근



겨울 새벽 혹한 추위에 잠 깨어 언 살 언 뼈로 볼펜을 들어
원고지 빈칸 채워나가며 시인詩人을 꿈꾸었던 시간이 내게도
있었다

초저녁 쇠죽 끓이기 위해 달구어진 방은 새벽이 오기도 전
에 싸늘히 식고 방의 안과 밖은 하나가 되어 머리맡에 둔

물잔에 얼음이 얼었다

당숙이 아침 쇠죽을 위해 아궁이에 장작불을 피우기 전에
는 하북면 삼감리 스무 살 내 습작習作의 방은

빙점하氷點下의 나라

온몸으로 엄습하는 추위에 수마睡魔도 눈을 떠, 시를 쓰며
나는 꿈꾸었다 시인은 우주 한 칸 한 칸 채워지는

모국어는 신생의 별이려니

그 별들과 함께 우주를 만들어가며 나는 스스로 뜨거워졌다 
아아 나는 시로써 지구별의 작은 아궁이에 불을 밝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태우는 불이 지구를 데우고 우주를 데우려니 혈관을
타고 돌기 시작하는 더운피들이 손가락 끝까지 퍼져가

시의 꽃들을 피워낼 때

먼 훗날 내 이름 앞에 시인이란 영광 자랑스러이 붙는다

해도 내 시는 언제나 겨울 새벽에 태어나게 하리라 다짐했었다

영하의 입김에 세상의 물들 쩡쩡 제 몸이 어는 아픈 소리로
결빙되어도 나를 태워 우주의 추위 다 덮는

따뜻한 시를 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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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처럼 따뜻한 시를 쓰고 싶은 새벽

이시간 나는 왜 서재에 앉아있을까?

 

아직 따뜻한 시하나 쓰지 못해

아직 사랑의 시하나 쓰지 못해

아직 위로의 시하나 쓰지 못해

 

시 촉을 틔우고 있다.

하필 겨울 새벽에...


출처 : YCY교육그룹(스피치/면접/자기개발/창업/코칭)
글쓴이 : 이현옥(비단모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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