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10시41분 대전역에 채원이가 도착했다.
간호사일을 하는 작은아들이 오후근무를 하고 8시에 퇴근해 저녁먹고
내려왔다고 한다.
아마 아들은 채원이가 며칠째 우울해 하는 엄마의 마음을 달래는 보약이란걸 알기때문인것 같다
대전역에서 아이들을 기다리는 몇분동안 이상하게 설렜다.
대전역이 주는 묘한 기분
만나고 헤어지고 떠나고 돌아오는 그곳의 기분은 참 묘하다.
기차에서 내리는 손녀를 번쩍 안은 남편의 얼굴이 환하다.
"하부지 케티엑스 타고왔어요"라고 대견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이는 손녀를 바라보는 일
강력한 진통제를 맞은듯 나도 웃음이 나왔다.
새벽 다섯시 잠이깼다.
뭐 새벽밥을 해야할 날도 아닌 토요일인데
푹 자도 상관없는데 의지와는 반대로 잠이깨졌다.
냉장고에 들어있는 양파즙 하나를 꺼내 새벽 공복에 마셨다.
알싸달콤한 양파즙이 빈창자를 타고 내려가는 느낌이 선명했다.
손녀는 할아버지 팔을 베고 잠들어 있었고
할아버지는 손녀를 포근히 안고 있었다.
참 이쁜 모습이다.
이시간 뭐할까 하다가 한달전도 넘게 사놓은 책이 생각났다.
큰며느리가 인터넷으로 주문해 준책 신경숙'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가 생각났다.
책을 사고 이렇듯 오래 손도 안대고 있었다니..
책을 펴들었다.
인쇄냄새가 풍겼다.
창너머 계족산도 아직 잠들어 있었다.
서재 의자에 깊숙이 등을 묻고 두다리를 작은 의자에 올려놓고 책을 읽어 내려갔다.
묘한 끌림이 시작되었다.
신경숙의 문체가 조용히 내 신경줄을 잡아당겼다.
역시 약이 좋기는 좋다
어제 그렇게 심하던 방광염도 약과 주사로 증상이 없어졌다.
그래서 기분이 좀 나아졌다.
며칠전 부터 내차 옆문이 열리지 않아 어제 퇴근길에 남편에게 들렀더니
일타에 해결이되었다.
차안을 깨끗이 정리해 주었다.
강력한 바람스프레이로 차안의 먼지까지 깨끗하게 털어주었다.
그러고 집에 돌아왔는데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핸드폰으로 내 통장계좌 번호를 찍어달란다.
왜애~
그냥~
조금있으니 자동문키 여는 소리가 톡톡톡톡 들린다.
휘파람을 불며 들어왔다.
무슨 좋은 일?
응 당신통장에 돈 좀 넣었어?
얼마?
응...**만원..
뭐!!뭐라고 그렇게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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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방송일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집안 살림통장을 남편에게 넘겼다.
모든 공과금 세금 보험료들이 통장에서 빠져나가기 때문에 일일이 은행에 갈 일이 없어졌다.
남편 통장이 해결하면 그 뿐이었다.집안 대소사 일도 남편통장이 하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남편은 자신의 은행에서 현금을 뺄 수 있는 카드하나와 자동차 기름 넣고 밥먹고 옷 살때 쓰라고
현대M카드 하나를 만들어 주었다.
내가 쓰는 모든건 남편월급 통장에서 빠져나가면 되는 것이었다.
남편은 얼마나 쪼달리는지..
작은 아들 이사시킬때 대출받았던 돈 일부는 남편이 가지고 있는 회사 주식을 팔아
갚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참 알뜰하게 사는 남편이다.
그러며 남편의 월급날짜 10일도 간간 잊으며 지냈다.
내가 필요한 돈..등록금 각종모임회비는 내가 일해서 충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간혹 남편이 내 통장 카드값으로 O원이야 ..조금만 이체 시켜줘 하면
내 통장에서 남편통장으로 얼마간 이체 시켜주면 되었다.
0원 통장 가진 남편 믿고 살아도 되는거야..하며 간간 웃었다.
그러다 남편이 보너스 타는 달이면 내가 이체시켜준 돈에다 20%더 얹어 내
통장으로 이체시켜놓는 일은 내가 했다.
당신 통장에서 이만큼 내통장으로 옮겼어
잘 했어
그러면 그만이었다.
그러다 남편 월급날이 생각나면 한 10만원쯤 빼서 내지갑에 넣었다.
남편월급 이만큼 은 내가 써도 되는거 아닌가?
보너스 달이다 생각되면 20만원쯤 빼서 내 지갑에 넣었다.
남편거 이만큼 쯤은 내가 써도 되는 거 아닌가!
남편은 한번도 내게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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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아파트 리모델링을 했다
입주해 이사온지 15년정도 된 집 전체를 뜯어내고 짐을 익스프레스에 맡겨두고
보름간 리모델링을 하면서 나는 내통장의 돈을 털었었다.
2000만원 정도 들어갔나보다.
순전 내가 일해서 모아둔 것을 가지고 집을 변신시켰다는 자부심은 컸다.
남편도 즐거워했다.
어둡던 갈색 문들을 뜯어내고 온통 하얗게 화이트 하우스로 바꾸었다.
그러며 또 몇년 기분좋게 살고 있다.
지금은 또 곳곳이 변했지만 나의 공로가 들어 있어서인지 애착이 가는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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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살림 들어가는 경제적인 신경을 안써서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다.
그건 그렇다.
하지만 신혼첫달부더 지금까지 남편의 월급봉투와 보너스봉투를 소중히 모아두었다.
신혼때는 일기장에 달달이 붙여놓았다.
그리고 그 월급봉투에 가계부까지 꼼꼼히 적어두었다.
그때월급이 14만원 정도 였는데 100만원짜리 1년 적금 8만원을 넣고 나면
6만원 가지고 연탄 오십장 쌀두말 그리고 부식,,,8남매 며느리역할과 13년간 8번의 대수술을 한 아들
기르며
살려면 정말 월급은 사흘도 안돼 바닥이 났다.
그 월급봉투를 받을때마다 남편에게 고맙다고 말했었다.그리고 가끔은 그 적은 월급에서
2000원짜리 시집한권을 사기도 했고
월급날 저녁이면 통닭한마리는 사먹었었는데..그래서 아이들이 환호했는데
지금은 그런 기쁨도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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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신문에 남편회사 소식이 났다.
기아차 임단협 완전 타결
금속노조 기아차지부는 3일, 전날 열린 2010년 임단협 잠정안에 대한 조합원 찬반투표 결과 임금은 61.76%,
노조전임자 무임금 및 타임오프제 도입과 맞물려 올 노사 협상의 상징적 사업장으로 여겨졌던 기아차가 별다른 파열음 없이
하지만 올 임단협을 분규 없이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기아차 사측이 경영의 자율성을 일부 포기한 점은 옥에 티로 지적된다.
기아차 노사는 단협안 개정을 통해 국내 고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해외 생산 차종의 해당 국가 이외 국가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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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유로 남편이 내통장으로 보너스를 전부 입금해 주었다.
그냥 주고 싶어서 라고 말했지만...정년을 1년 남긴 남편이 언제 아내에게 이렇게 해줄 수 있을까...
라는 마음으로 넣어준것 같다..
"정년 연장은 없는걸로 타결되었네..연장 되었으면 좋았을텐데..."
남편의 그말이 참 쓸쓸하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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