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는 이야기

일요일 아침풍경

비단모래 2005. 10. 23. 09:38

 

밤새 기침으로 시달리다 잠든 일요일 새벽

가만 일어나 이불을 덮어주는 손길을 느낀다.

돌침대가 따끈하다.

 

주방에서 딸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오늘 아침 회사 창사기념일 체육대회를 주관한다는 남편은

김치국을 끓여 찬밥을 말아먹는다.

내가 해준다고 하자 더 자라고 눈웃음이다.

 

일어나서 햇은행을 까서 프라이팬에 볶았다.

기관지에 좋다고 한다

투명하게 녹색으로 변한 쫄깃한 은행 서너알을 남편에게 먹이고 나도 먹는다.

붉은 꽈리도 몇개 까먹는다.

목이 아프고 등이 아프다.

몸살 감기 ......참 이런것까지 나를 괴롭히다니.

 

"오늘하루도 잘지내..저녁에 병원에서 보자"

"응 방송 끝나는 대로 곧바로 갈께"

 

남편이 나가고

압력솥에 고구마를 몇개 쪘다.

고향 형님이 보내주신 속이 노란 호박고구마

아이들도 날 닮았는지

밥보다 고구마를 쪄놓으면 좋아한다.

 

노랗게 익은 고구마를 아이들과 함께 우유랑 먹는다.

 

아이들이 야구복으로 갈아 입는다.

매주 일요일 이면 두 아들은 아마츄어 야구단에서 하루종일 야구를 한다.

큰 아이는 투수고 작은 아이는 1루수란다.

동생을 데리고 취미를 즐기는 큰아이가 대견하다

 

"철이는요,,,몸 때문에 잘 뛰지는 못해도 파워가 있어서 타격은 좋아요

형들이 얼마나 귀여워 하는데요"

"형아는 에이스 투수라서 형들이 좋아해요..폼이 꼭 박찬호선수 같잖아요

난 늘씬하고 키 큰 형이 무지 부러운데"

 

형제가 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는게 보기좋다.

서로 만나면 같이 PC방도 가고 당구장도 가고 호프집도 다니면서

둘의 공통분모를 만들려고 하는 모습

한살위인 형은 형답게 동생을 사랑하고 한살아래인 동생은 동생답게

형을 어려워 하면서도 좋아한다.

부모가 보기에 가장 좋은 모습 ..형제우애하는 모습이다.

 

프로야구 선수처럼 차리고 두 아이가 나갔다.

"엄마 저 저녁 일곱시에 직장인 밴드 오디션 보러가요"

작은 아이가 말한다

"무슨파트?"

"싱어나 드럼"

"그래 잘 하고와..저녁에 엄마는 할머니 병실에서 잘거야"

"그럼 밤에 저희도 들릴께요"

씨익 웃는 작은 아이의 눈웃음이 구절초처럼 싸하다.

대학때 보컬그룹을 만들어 리드싱어를 한 아이

공연에 초청 받아 한번 갔더니 무대를 뛰어다니며 노래를 하는 아이의 모습에 반했었다.

 

"엄마는 우리를 간섭 안해서 정말 좋아"

"간섭 해봤자 내모습처럼 밖에 안될텐데 뭐...하고 싶은 거 마음대로 하고

인생 즐겁게 살아"

"엄마 감기 심한데 옷 든든히 입고 나가세요"

 

모두 나가고 나 혼자다.

거실에 가을햇살이 가득하다.

거실에서 나를 바라보는 잡다한 일들

청소기를 한번 밀까? 어제 동서가 사 보낸 스팀청소기를 한번 써 볼까

아이들이 벗어놓고 간 누에껍질같은 옷들을 세탁기에 넣으며

피식 웃었다.

어쩌면 이렇게 동그랗게 몸이 빠졌을까..양말은 왜 이렇게 뒤집어 벗어놓았을까

가지런하게 침대를 정리해 놓은 아빠와 달리

아이들 침대위 이불은 제마음대로다.

 

늘 정리된 남편....... 나는 좀 그렇다.

아이들이 날 닮은것 같다

 

"손톱깎기 쓰면 제자리 놓았으면 좋겠네"

결혼하면서 남편이 주문한 말 인데 지금껏도 지켜지지 않는다.

참 이상하다.

 

서재 창밖하늘이 투명하게 파랗다.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TV가 저혼자 떠든다.

 

아 아랫집 동생들 불러야지....막내여동생도 어머니 뵈러 내려왔고

오빠들 다 내려왔는데...병원을 가야지.

마음이 급해진다.할 일은 많은데 또 헝크러진다.

 

생방송 준비로 출근도 해야하고..나의 일요일은 또 이렇게 시작됐다.

 

청소? 아이들에게 청소기 밀라고 하고

"아들...청소기좀 밀어주면 엄마 행복할텐데..."

"에구......엄마 행복 깰수도 없고.."

 

빨래? 남편이 돌아오면 널고 개고 할테고...쓰레기 분리수거 해줄테고

"나 빨래 못 널었는데...쓰레기 버려야하고"

"쓰레기 버리면 손에서 냄새나지.....머슴인 제가 하죠"

 

그냥 웃으며 떼쓰면 마지못해  해주는 우리집 남자들

그들이 있어 나는 화장대에 앉을 수 있다.

밖에서 일하는 아내와 엄마를 둔 우리집 남자들....

이해많은 그들에게 감사를 느끼며 가을을 마음에 들여놓는다.

 

구절초

마디마디 이야기 차오르는 가을길을 걷는다.

마흔 여덟... 불혹의 끝자락 가을강을 또 건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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