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로 전국이 몸살을 앓고 있을 때
우리집은 경제적인 이유가 더 문제였다.
모든 행사가 취소된 우리집
그저 막연히 있을 수 없어 그 시간을 시골에서 보냈다.
뉴스도 보지않고 핸드폰도 던져두고
오래된 시골집을 청소하고 단장하면서 시간을 보내면 몸은 고단해도 마음은 상쾌해졌다.
아주 오래된 잠실방이 하나있다.
누에를 키우던 방이다.
예전 누에를 키울때는 뽕잎을 따는 일이 무척 힘이 들었다고 한다.
소나기 소리를 내며 뽕잎을 갈아먹는 누에들이 고치를 만들때까지는
신선한 뽕잎을 따야하는데
그건 학교에 가기전 새벽같이 일어나야 하는 고된 일이었다고 한다.
그 방은 창고처럼 변해있었다.
안쓰는 물건들이 수북하게 쌓였고 그야말로 발 디딜곳도 없었다.
더구나 방구들은 허물어지고 벽은 금이가고
금방 허물어져 내릴것 같았다.
아버님이 계실때는 훈김이라도 있었지만 아버님이 병원에 계시니
집은 노쇠해지고 바람에도 무너질 기세였다.
이 집을 예쁘게 단장하기로 했다.
해마다 8월15일 8남매가 모이는데 식구가 늘어나다 보니 어디 앉아서 편하게 밥먹기도 어렵고
더구나 잠자리가 불편하기 이를데 없어 일없는 이기간동안 집정리나 하자고
일주일에 세번씩 시골집을 다녔다.
집을 정리하다보니 반가운 물건들이 나왔다.
남편 중학교때 썼다는 앉은뱅이 책상도 나왔고
주판도 하모니카도 나왔다.
그리고 남편의 중학교 졸업앨범도 나왔다.
저렇게 눈만 동그랗던 까까머리 학생이 어느새 60중반의 나이가 되어
어린시절 추억을 더듬고 있다.
내가 반가웠던 건 한문으로 복자가 쓰인 사기 대접이었다.
대접보다는 조금 작은 김치보시기라면 더 어울릴것 같은 그릇
막걸리를 따라 마시면 제격인 이 보시기가 나왔다.
깨끗이 닦으니 예전의 모습이 보인다.
이 그릇에 밥을 담아 먹으니 그맛 또한 추억 삼삼한 맛이다.
매일 이그릇을 닦으셨을 어머니의 손길이 묻은 사기대접
요즘 쓰는 화려한 그릇은 그릇장에 넣고 이그릇을 내놓았다.
그릇도 나처럼 늙어가지만 나처럼 추억이 담겼기 때문이다.
본채 윗방에 작은 창호문이 하나있다.
벽에 낸 창에 유리문을 달지않고 이렇게 창호문을 달아둔게 운치있다.
하지만 하도 오래 창호지문을 그냥두어서 창호문은 누렇게 변했고 구멍이 숭숭 나 있었다.
새 창호지로 바르려고 풀을 쑤고 오래된 창호지를 떼어내고 걸레로 닦았다.
오래된 세월만큼 문틈에 쌓인 먼지를 닦는 일은 번거로웠지만 이렇게 창호지를 떼어내고
문틈으로 내다보는 뒤꼍은 초록이었다.
그래서 여름동안은 창호지를 바르지 않기로 했다.
그냥 뒤쪽으로 모기장을 발라놓았으니 이대로 두고 바깥을 내다보고 싶어서였다.
머위와 망초대가 초록을 이루는 뒤꼍
그리고 앵두가 익어가는 뒤꼍을 오래된 창호문틈으로 내다보는 세상
그 세상에도 추억이 묻었다.
오래된 것들에는 연민이 있다.
오래된 고향도 그렇고
오래된 집도 그렇고
오래된 물건들도 새로 들여다 볼 수록 애틋하다.
물건 하나하나에 추억이라는 이름표가 붙어
함부로 버리지도 못하고 그냥 가슴에 담는다.
그냥 그리운 시간들이 와락 쏟아져 안기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