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모래 2020. 2. 18. 13:52

 

 

#이혼전문변호사

#스피치

#계란빵과 아버지

 

결혼은 계약이다

그 계약은 해지할 수있다

 

 

간디는 40에 해혼(解婚)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오늘

머리가 띵하게 아프도록

먹먹했다

ᆢᆢᆢᆢ

첫경험에 대한 나의 이야기는

계란빵과 아버지였다

 

사연 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

책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나는

왜 그렇게 생의 마디마디 사연이

많을까

 

1996년ᆢ남편이 다니는 회사가

부도가 났다고 대서특필 되었다

나는 ^그럼 월급은?^부터 머리속을

채웠다

 

수 만명 직원의 생계를 책임지던

노아의 방주같은 남편의 직장

큰 아들은 대학입시를 고2였고

작은 아이는 중3

 

두 아들이 먼저 눈 앞에 다가왔다

매달 10일 이면 어김없이

웤급봉투를 가지고 와

아이들에게 모처럼 통닭이나 먹고싶은것

을 먹일 수 있었고

한 달에 한 번 남편은 뿌듯한 웃음을

웃었었다

 

그런데 부도라니

복잡한 단어는 모르겠고

나는 그저 그럼 월급은?ᆢ생각만 가득했다

 

반전에 반전만 거듭하는 나의 삶은

그 불안감은 적중했다

10일이 돌아와도 빈 손으로 들어왔고

남편동료들은 회사를 떠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남편은 내 아들을 살린 회사를

끝까지 지키겠다고 했다

 

월급이 나오지 않았다

적금을 와장창 깼다

나중에 만약에 ᆢ하고 들어놓은 보험도

지금ᆢ하고 해약했다

거기에 생전 들어보지 못한 IMF라는

날 선 바람이 달려들었다

 

그리고

찬 바람부는 거리에 섰다

계란빵 포장마차를 시장 버스정거장 앞에

세웠다

 

빵은 탔고

우리는 그걸 식사대용으로 꾸역꾸역

넘겼다

 

포장마차는 가끔 불법으로

거리에서 쫒겨났고

생은 그 리어카를 끌고

눈 내리는 거리를 비틀거리며 걸었다

 

어느날

적막같은 포장마차에 친정아버지께서

찾아오셨다

 

엄마가 솜버선과 털신을 사서 보내셨다

엄마는 차마 거리에 선 딸을

볼 수없어 못오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계란빵을 포장해

달라하셨고

돈과 함께 흰 종이를 내미셨다

 

사후신체기증서

 

거기에 사인하라는 거셨다

 

왜 하필 내가 거리에 섰을 때

이런 막막한 도장을 찍으라 하시냐고

울었다

 

^이 세상에 와서 공헌 한 일 없고

자식들 고생만 시킨 부모

몸 이라도 세상에주고싶다^

 

그 말씀에 나는 싸인을 하고 말았다

 

결국 나의 부모님은

사후신체를 병원에 헌체 하셨고

나는 여러번 잠에서 소스라쳐 놀라

깨기를 반복했다

 

지금은

천 갈래 가른 몸으로

소영원에 잠들어 계시지만

위대하고 특별한 부모님의

유전자 때문에

간혹 진지해지기도 한다

 

그해 크리스마스 저녁

케잌을사들고 포장마차를 찾아온

부부가 있었다

 

그들은 눈물겨운 감동의 빵을

먹게했고 그 힘은 지금까지

내가 살아가는 절반의 응원이 되었다

 

그 인격이ᆢ지금은

사장님 이라는 위치에

올라도

변함없다는 걸 느낀다

 

그후 남편의 회사는 기적처럼

봉고신화를 만들어냈고

화려하게 다시 일어섰다

 

30여년 직장에 몸담고

퇴직할 수있는 행운으로

계란빵 포장마차는

추억의 페이지에 접혔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이길 힘을 경험했다

 

그 후도 많은 고비를 넘겼지만

우리는 바람에 쓸려도

꺾어지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