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ㆍ(방송 마지막부문)
#나는 누구였나
^애기였네^
0순위가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순간
^누군데?^
^이쁜마누라^
^잉ᆢ나라고?^
^우리 결혼식 끝나고
친구들과 만수원가서 피로연 할 때
찍은 사진여^
^이게 어디서 나왔대^
^앨범^
그러고 보니 나다
결혼 앨범 속에서
40년 간 내 세월과 함께 흐른 사진
나는 이렇게 변했는데
그날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사진
무슨 인연 일까?
그때 결혼식을 끝내고 가서 친구들과
피로연을 한 장소인 만수원은
지금은 작은아들이 근무하고 있는
대학병원이 들어섰다
만수원은
이름처럼 참 나무도 많은 아름다운 공원이었다
봄이면 목련꽃 흐드러져 친구들과
사진 찍으러 가던 곳이었다
그당시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사랑받았고 결혼 피로연 장소로 사랑받았다
만수원 가는길 신신농장도 있었는데
그곳도 연인들의 사랑장소 였는데
지금은 교회가 자리잡고 있다
이 사진을 찍을 때
아무도 믿지 못할 몸무게 50kg도
되지 않았었다
시어머님께서 아기도 못낳겠다고
맏며느리감으로 걱정 많이 하셨던
그 당시의 몸은 결혼생활 하면서
참고 싸우고 인내하며 몸 속에
사리가 쌓이고 쌓여 결혼 햇수만큼
몸무게도 늘었다ᆢ
내 앞길에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모르고 시작한
1979년12월1일 그날 이후
나는 살다 죽다 죽다 살아났다
8남매 맏며느리도 버거웠다
작은아이 여덟번 수술
나 여섯번 수술로 버거운 내 인생은
전국 의료보험수기 최우수상을 받아
150만원을 받았다
첫 시집을 내서
여성동아ㆍ여성중앙ㆍ여원ㆍ주부생활
같은 여성지에 대서특필 되었고
신문에 났다
시집은 4쇄를 인쇄했다
전국의 직장동료들이 구입해줬다
MBC 여성시대 신춘편지쇼에
당선돼 가족초청을 받아 에버랜드(그때는 용인 자연농원이라했다)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을 불러 공연해주고 상을받고
서울MBC 여성시대 생방송에
출연했다
그리고 KBS 휘파람을부세요ㆍ가요무대
에 출연했다
대전MBC에는 TV.라디오에
출연하고 대전MBC 방송작가를
24년 했다
내 시가 모기업의 달력에 실려
수 만부를 찍어 한 때 따뜻한 밥이
되기도 했고
한밭전국백일장 부터 각종 백일장에서 문운의
즐거움을 느끼는
상을 받고 시인이라는 이름을 얹었다
10대는 너무 가난해서
20대부터 40대부터는 아이와
내가 아파서 수술 하느라고
마흔 두살부터 쉰 넷까지는 공부하느라고
나는 내 이름 내 가치
내 자존감을 잊고 살았다
그야말로
거대한 파도가 몰려왔다 몰려가고
폭풍우속이었고
눈물이 넘친 바다같은 삶이었다
다행이 파도는
나의 뽀족한 생각들을 동글하게
몽돌로 만들어 놓기는 했다
나는 돌아가고 싶은 나이가 없다
그 질곡의 나이 속으로 가고싶지 않다
지금이 가장 편안하기 때문이다
상처가 꽃으로 피었고
절망이 희망의 꽂눈이 되었음을 알았다
시련이 마음을 벼리었고
고통이 시련을 벼리는 숫돌이 되었다
이제 나에게
남은건 이 만큼의 나이하고
아홉 권의 내 분신
내가 쓴 책
나와 같은 색으로 물들어가는 0순위
그리고 내 가족들
사진을 오래 바라보며
애기였네 ᆢ라고
낮은 목소리로 말하던 0순위의
머리에 스쳐간 많은 생각중에
고생시켜 미안하다는 생각은
이제 그만 해주길 바란다
나는 지금 이 나이가
가장 좋으므로ᆢ
ᆢᆢᆢ
꽃섬
비단모래
천 번의 파도
천 번의 풍랑이 일고 간
여자의 가슴 속은 바다
아우에게도 말할 수 없는
붉은 진주 하나 품고
뒤척이며 뒤척이며
상처로 담을 올려
꽃섬 하나 지었다
바람이 다녀간 가슴
짜디짠 눈물은 졸아들어
부패되어 가는 시간
꾸득하게 말리는 소금이 되었다
풍랑의 바다에서 건진 달빛
별무더기 꽃무더기
둥근 꽃섬
바람처럼 살아온 한 여자
꽃마실 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