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시(詩)

[스크랩] 소면-류시화

비단모래 2014. 10. 17. 11:20

소면

                         - 류시화

 

  당신은 소면을 삶고

  나는 상을 차려 이제 막

  꽃이 피기 시작한 살구나무 아래서

  이른 저녁을 먹었다 우리가

  이사 오기 전부터 이 집에 있어 온

  오래된 나무 아래서

  국수를 다 먹고 내 그릇과 자신의 그릇을

  포개 놓은 뒤 당신은

  나무의 주름진 팔꿈치에 머리를 기대고

  잠시 눈을 감았다

  그렇게 잠깐일 것이다

  잠시 후면, 우리가 이곳에 없는 날이 오리라

  열흘 전 내린 삼월의 눈처럼

  봄날의 번개처럼

  물 위에 이는 꽃과 바람처럼

  이곳에 모든 것이 그대로이지만

  우리는 부재하리라

  그 많은 생 중 하나에서 소면을 좋아하고

  더 많은 것들을 사랑하던

  우리는 여기에 없으리라

  몇 번의 소란스러움이 지나면

  나 혼자 혹은 당신 혼자

  이 나무 아래 빈 의자 앞에 늦도록

  앉아 있으리라

  이것이 그것인가 이것이 전부인가

  이제 막 꽃 피운

  늙은 살구나무 아래서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가

  이상하지 않은가 단 하나의

  육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니

  두 육체에 나뉘어 존재한다는 것이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영원한 휴식인가 아니면

  잠깐의 순간이 지난 후의 재회인가

  이 영원 속에서 죽음은 누락된 작은 기억일 뿐

  나는 슬퍼하는 것이 아니다

  경이로워 하는 것이다

  저녁의 환한 살구나무 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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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의 부재를 위해

그대와 소면을 먹고 싶습니다

 

출처 : YCY교육그룹(스피치/면접/자기개발/창업/코칭)
글쓴이 : 이현옥(비단모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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