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잎에도 그리움이...
어느새 새벽바람이 서늘하다.
그렇게 폭염을 쏟아붙던 여름도 가을기운에 밀려가고 있다.
계족산에 가는 길
싸한 아침 공기가 폐속에 박하향으로 퍼진다.
풀섶에 맺힌 이슬을 차며 산에오른다.
새벽산
고요히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내려오는 길가에서 호박잎을 파는 곳을 만났다.
간간 산길에서 만나는 먹거리들
산비슬에 농사를 지어 길가에 조금씩 모아놓고 파는 모습이 정겨워 가지 호박같은 것을 사온다.
마트에서 사는것보다 훨씬 신선해 반찬을 해놓아도 쫀득하다.
핸드폰 케이스에 늘 천원짜리 몇장씩 넣어가지고 다닌다.
오늘아침은 호박잎을 만났다.
부추와 호박잎 몇무더기 놓고 파는 곳에서
'호박잎 한묶음을 샀다.
천원이다.
천원이 주는 행복이 그윽하게 번진다.
남편은 유난히 호박잎국을 좋아한다.
가을초잎이면 더 그 뜨끈한 국물을 그리워한다.
그 호박잎 국에는 잊지못할 어머니 손맛..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어머님은 손맛이 좋으셨다.
그냥 뚝딱하시는데도 엄마양념을 뜸뿍 넣어서 그런지 맛이 담백했다.
열무겉절이도 금방 뽑은 열무에 소금 살살 뿌려놓고 붉은 고추를 확독에 가셨다.
붉은고추가 어느정도 갈아지면 거기에 마늘몇쪽 생각 작은쪽도 갈아내셨다.
동글 돌멩이는 반들해져서
돌확에 갈면 쓱쓱 소리가 났다.
거기에 보리밥 한술을 넣어 또 갈아
젖국 조금 넣고 살살 비벼내면 기가막힌 열무겉절이가 상에 올랐다.
호박잎국도 호박잎 몇장 따고 애호박 한개 감자 몇개
어머님이 말씀하시던 멸치꼬랑지 몇개
거기에 장독대서 노랗게 익은 된장과 선홍색 고추장만 있으면 됐다.
뽀얗게 받아놓은 쌀뜨물에 멸치를 끓이다 건져내고 된장을 풀어넣으셨다.
호박과 감자을 돌확에 으깨어 넣고(비법이 이거였나보다..칼로 썰면 맛이없다고 하셨으니)
호박잎 씻어 손으로 찢어 넣으셨다.
그리고 폭폭 끓으면 됐다.
상에 갓 무친 열무겉절이와 호박잎국만 올라와도 식구들은 환호를 했다.
아..역시 어머니 맛이야...
어머님은 그냥 바라보고 웃으시면 그만이셨다.
별 말씀이 없으신 분이셨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남편은 어머니만 잃은게 아니라 어머니의 손맛을 그리움을 묻어야했다.
나도 어머님만 잃은게 아니라 어머님표 양념을 모두 잃었다.
간장 된장 고추장 참기름 들기름 그리고 볶은깨소금
각종 콩
김치...
그렇게 우리는 어머님의 맛을 기억속에만 저장해놓고
그 맛을 그리워하고 살아가고 있다.
오늘아침 호박잎국을 끓였다.
멸치몇개넣고 호박은 없어 감자를 썰어넣고..
그리고 호박잎 몇장은 찜솥에 쪄내고 간장에 청양고추썰어넣은 양념장을 만들었다.
아..호박잎국 냄새
남편은 호박잎국 냄새만으로도 기억속의 어머니를 기억해냈다.
호박잎국에 고추장 한수저를 풀더니 밥 한 그릇을 말았다.
그리고 맛있게 먹었다.
남편은 호박잎국을 먹으며 어머니 맛을 느꼈을까?
좀 맹숭한 아내 손맛이지만 맛있게 먹는 모습이 애잔하다.
우리에게는 이렇게 호박잎에도 그리운 것들이 있다.
이제 가을이 세상 가득하면 그많은 그리움 때문에 마음앓겠다.
가을을 앓겠다.
아...가을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