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꽃을 띄워놓고
무릉원에서 마신 매화차
매화향기가 가슴속으로 스며들면서
봄을 느끼게한다.
우리집 춘란 꽃피우다
겨우내 그냥 베란다에 두고 물도 주지않은 춘란
시낭송 회원이 몇년전 분양해준 것인데
저 혼자 겨울을 지내고 이렇게 꽃을 피웠다
경이롭다
사랑초도 꽃을 한창 피우고 있다
저녁에는 잎을 포개고 곱게 자는 꽃
수선화도 이만큼 자랐다
요건 무릉원에서 찍은 아름모르는 보랏빛 별꽃
ㅋ..마침 고추장을 담그셨다고 이렇게 많이 주셨다.
무릉원은 내마음의 쉼터..
뒤에 요강이 보이는 모습이 재밌다.
무릉원 실내에 매화꽃이 피었다.
이꽃을 따서 매화차를 마셨다
퇴계이황은 매화를 좋아했다고 한다.
죽는 마지막 까지 매화나무에 물 주어라 했다고 한다.
'외로운 무덤 길가에 누웠는데
물가 모래밭에는 붉은 꽃 그림자 어리어었으라
두향의 이름 잊혀 질 때라야
강선대 바위도 없어지겠지'
퇴계 이황의 후손들과 유학자들은 퇴계 선생의 제례를 지내고
나면 충북 단양의 강선대에 있는 두향의 묘를 참배한다.
또한 매년 5월 5일이면 단양의 향토사학자와 문인들도 두향제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성리학의 대가인 퇴계가 아내와 사별한 지 2년, 아들을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기생 두향을 가까이 했기에 밤퇴계와 낮퇴계라는 말이 생겨났다.
그러나 퇴계의 단양 시절은 열 달만에 끝나고 만다. 고을 수령은 임기가 보통 5년인데,
그의 넷째 형 이해가 충청도 관찰사로 부임하게 된 것이 까닭이었다. 형제가 같은 도에서
근무하는 것이 온당하지 않다하여 퇴계는 고개 너머 경상도 풍기 군수로 옮겨가게 된다.
짧은 인연 뒤에 찾아온 급작스런 이별은 두향에겐 큰 충격이었다.
퇴계 역시 헤어짐을 아쉬워하여 단양의 풍경을 소재로 가장 많은 시문을 남겼는데,
두향은 퇴계를 그리워하다 스물 여섯의 짧은 생을 살다갔다고 한다.
그녀의 유언으로 강선대 가까이에 묻혔고 그로부터 단양 기생들은 강선대에
오르면 반드시 두향의 무덤에 술 한 잔을 올리고 놀았다고 전해진다.
그 후 이광려가 퇴계와 두향의 애절한 사랑을 시로 남겨놓았다.
죽기 전 '저기 매화 나무에 물 주어라'는 마지막 말을 남긴 퇴계는 소박하고 거친 음식,
절제된 생활과 학문 탐구로 일생을 보냈지만,
이처럼 두향과의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도 남겨 놓았으니 진정한 선비라는 생각은 변함이없다 .
매화향기가 입안에 남아있는 밤...매화나무에 물주어라..가
결국 두향이를 잊지못한다는 뜻 아니었을까?
선비의 사랑에 가슴이 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