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의 새벽, 낯선길을 서성이다
새벽 3시 21분
컴퓨터 시계가 선명하다.
아파트 현관문 밖으로 조간신문 던지는 소리가 들렸다.
세상의 많은 이야기를 싣고 조간신문은 어둠속에 척 ~소리를 내며 우리집 현관 문앞에 떨어진다.
남편이 출근하며 집안으로 들여놓기 전까지는 어둠속에서 세상이야기는 잠들어 있을것이다.
이 새벽까지 나를 잠과 격리시킨건 약간의 두통 그리고 복통 어지럼증
못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는 책 한권이다.
그러니까 어제 19일 아침
10월1일 손 수술후 매일 남편이 머리를 감겨주고 세수를 시켜주었다.
할머니 제사에 내려왔던 작은 아들이 두어번 머리를 감겨주었다.
어제아침은 그런대로 내가 할만해서 "할 수 있겠어?"라고 걱정하는 남편에게
"걱정마..할 수 있어"라고 대답했다.
미심쩍게 출근하는 남편을 보내고 머리를 감으러 들어갔는데 눈앞이 노래지도록
현기증이 일었다.
아..이렇게 쓰러져 죽는 거구나..아득하게 수돗물 소리가 들렸다.
저녁 남편이 퇴근할 때까지 우리집에 아무도 오지 않을텐데..
우리집 문 비밀번호를 아는 큰아들내외 작은아들내외 그리고 아랫집 동생내외도
올 리 없는데...
불안감이 나를 일으켰다.
현기증을 잠재우는데는 좀 시간이 걸렸다.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하고 어질거리며 나와 간단히 얼굴을 만지고 출근했다.
출근길에 우체국에 들러 시누이와 몇면 사람에게 빠른 등기를 부치고 운전하며 가는데
영 머리가 개운치 않았다.
하루종일..
참 ...사람의 무한 능력은 두시간 생방송을 하게 했고
퇴근후 문학동인회 모임을 하게했다.
문학동인지 19집을 내야한다는 회의와...
그러고 보니 우리문학모임도 20년이 되었다.
20년...참 오랜세월이 흘렀다.
그러고 집에 돌아와 눕고 말았다.
그러며 자꾸 빨간 표지의 책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님의 책이 눈길을 잡았다.
지인들과 저녁을 먹고 들어온 남편은 내게 청심환을 먹였다.
그리고 두통약을 먹였다.
"엄마..제가 간호를 해보니까요..극심한 통증에 시달려도 이겨내는 사람은
우선 주변에서 아픈고통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고요..자기의지가 강한 사람이더라고요.
엄마는 엄마 아픔에 오버하는 아버지가 계시니...괜찮을거예요"
라던 작은 아들 말이 생각났다.
그랬다.
내가 조금만 아프다고 하면 어디서 났는지 어떤 약이든 먹이는 사람이고
꼭 병원을 데리고 가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병원 가야하지 않겠어?"
걱정스레 말하는 남편에게 "얼른 자"
좀 짜증스레 말하고 말았다.
아무말 없던 남편은 곧 잠이 들었다.
싫었다.여기저기 통증의 신호를 보내는 내몸이..
짐이 되는 것 같은 부담감이...
배가 아파 화장실에 가면서 책을 들었다.
못가 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님의 사인이 든 책
며칠 전 큰 며느리에게 이책을 사줄 것을 부탁했다.
컴퓨터를 다루며 블로그나 카페활동을 할 줄 알면서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사는 것은 해보지않았다.
아니 폰뱅킹이나 인터넷 뱅킹은 한번도 시도하지 못했다.
훨씬 쉽다고 하는데 폰뱅킹을 하려고 무슨 번호인가 열심히 찍다 틀리고 해서 그만두었다.
꼭 은행에 가서 돈을 부치곤한다.
서점에 가서 내가 사면 되는데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이렇게 며느리 손을 빌린다.
기꺼이 네에...하면서 들어주는 며느리가 고맙다.
이책을 세시까지 절반을 읽었다.
자야지 자야지 하면서도 계속 읽혔다.
실은 요즘 노안이 와서 책읽기가 불편하다.
조금만 책을 봐도 눈이 아프고 눈물이 나고 잠이오고..
그런데 이책은 뻑뻑한 눈을 비비며 읽어도 자꾸 읽힌다.
결국 새벽 신문소리까지 듣게 했고 나를 컴퓨터에 앉혔다.
둘이 사는 집..
하나는 깊이 잠들어 있고..
하나는 이렇게 새벽 길을 서성이고 있다.
서재 밖으로 보이는 까만 길에 지나는 자동차도 뜸하다.
건너편 아파트 몇 곳에 불이 켜져있다.
아마 수험생이 있는 집이던가..아니면 누군가 이시간까지 안왔던가
그도 아니면 새벽일을 가기 위해 일찍 일어났던가
그도 아니면 나처럼 이 새벽 낯선 길을 불면으로 서성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책에 든 빨간 책갈피줄을 끼워둔다.
이책을 다 읽다가는 나는 오늘하루도 두통에 시달릴 것이다.
어찌하든 잠 들어야 한다.
그래야 오늘 생방송도 해낼 수 있다.
머릿속 엉긴 생각들을 걷어내고 깊이 잠들어보고 싶다.
새벽 3시 50분...
초침이 건너가는 시간을 가로질러 몇시간쯤 시간을 잊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