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는 이야기

가을...타고 있는 중

비단모래 2010. 10. 13. 11:20

 

 

 방송국 주변은 온통 가을축제가 열리고 있다.

어느새 노랗고 빨갛게 가을색을 칠하고 있고 간간 부는 바람에 뚝뚝 잎을 떨구고 있다.

출근길...이 아름다운 방송국에서 보낸 20년...내 마음속에도 아름다운 가을색이 칠해지면 좋겠다.

수술후 2주가 지나가고 있는데 아직 극심한 통증으로 시달리고 있다.

아니 수술 전보다 통증이 더 심하다

무슨일일까?

내일 대학병원에 가는 날인데 두렵다. 어떤 이야기를 할지..

이작은 통증이 커다란 나를 피곤하게 하고 짜증나게하고 송곳처럼 뾰족하게 만들고 있다.

손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것 얼마나 축복인지 다시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손이 못생겼다고 늘 투정했는데..그래서 미안하다.

 손 수술 후 2주째 아침마다 내머리를 감기고 세수를 시키고

목욕시키고 ..밥차려주고 ..하는 내 사람이 있다.

그의 투박하고 까끌한 손이 내얼굴을 지날 때 뭉클하다.

결혼해서 30년간 여러번의 수술울 하며 골골하는 아내가 짜증날 법도 한데

변함없이 다감하다.

"어쩌다 손까지..."

어젯저녁 내가 아파하자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가슴이 뭉클했다.

내 사람앞에서 울지않으려 애쓰고 있다.

수술실도 담담히게 들어갔었고 나와서도 지금까지 담담히 지내려 애쓰고 있다.

그런데 너무 아프다.

간간 울컥 눈물이 치민다. 

 

행복전도사 최윤희씨는 어떤 통증으로 시달렸길래 삶을 마감했을까

아마 견디지 못했으리라...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통증은 참 괴롭다.

늘상 아프다 아프다 할 수도 없고..듣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괴로운 일이다.

 가을은 개편의 계절이다.

방송국도 개편회의가 한창이고 다음주 월요일부타 가을개편방송이 시작된다.

참 갈등의 시기다.

 일을 놓으면 손을 편해질테지만 마음이 복잡해질것 같고

계속하자니 손은 더 망가질것 같고..

 

가을을 타고 있다.

그렇잖아도 가을이 되면 생각이 많아지는데

올 가을은 더 심한 것 같다.

다른것도 아니고 건강때문에 사랑하고 좋아하는 일을 갈등해야 하다니.

이 한편의 시를 가슴에 담아놓는다

 

 

부부

                  최석우

 

세상에 이혼을 생각해보지 않은 부부가 어디 있으랴

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못 살 것 같던 날들 흘러가고

고민하던 사랑의 고백과 열정 모두 식어가고

일상의 반복되는 습관에 의해 사랑을 말하면서

근사해 보이는 다른 부부들 보면서

때로는 후회하고 때로는 옛 사랑을 생각하면서

관습에 충실한 여자가 현모양처고

돈 많이 벌어오는 남자가 능력 있는 남자라고 누가 정해놓았는지..

서로 그 틀에 맞춰지지 않는 상대방을 못 마땅해 하고

자신을 괴로워하면서

그러나, 다른 사람을 사랑하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 귀찮고 번거롭고

어느새 마음도 몸도 늙어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아

헤어지자 작정하고 아이들에게 누구하고 살 거냐고 물어보면

열 번 모두 엄마 아빠랑 같이 살겠다는 아이들 때문에 눈물 짓고,

비싼 옷 입고 주렁주렁 보석 달고 나타나는 친구.

비싼 차와 풍경 좋은 별장 갖고 명함 내미는 친구.

까마득한 날 흘러가도 융자받은 돈 갚기 바빠 내 집 마련 멀 것 같고 ...

한숨 푹푹 쉬며 애고 내 팔자야 노래를 불러도 ...

어느 날 몸살감기라도 호되게 앓다 보면 빗길에 달려가 약 사오는 사람은

그래도 지겨운 아내...지겨운 남편인 걸...

가난해도 좋으니 저 사람 옆에서 살게 해달라고 빌었던 날들이 있었기에..

하루를 살고 헤어져도 저 사람의 배필되게 해달라고 빌었던 날들이 있었기에..

시든 꽃 한 송이 굳은 케잌 한 조각에 대한 추억이 있었기에..

첫 아이 낳던 날 함께 흘리던 눈물이 있었기에..

부모 喪 같이 치르고 무덤 속에서도 같이 눕자고 말하던 날들이 있었기에..

헤어짐을 꿈꾸지 않아도 결국 죽음에 의해 헤어질 수밖에 없는 날이 있을 것이기에..

어느 햇살 좋은 날 드문드문 돋기 시작한 하얀 머리카락을 바라보다

다가가 살며시 말하고 싶을 것 같아

그래도 나밖에 없노라고..그래도 너밖에 없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