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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漢詩집 '阿爺'를 출간하며...

비단모래 2009. 2. 1. 13:16

 

 

2월에 우리 아버지의 한시집이 나올 예정이다.

평생 한시를 써오셨고 수백편의 비문과 번역을 해오신 아버지

이땅에 내놓을 만한게 못되신다고 극구 사양하심에

작은오빠가 한문선생님으로 전과를 해가며 한문공부를 해

아버지 시를 번역하고 다시 아버지께서 감수하셔서

아버지 시를 내놓게 되었다.

이번 시집은 우리 육남매의 영혼의 밥이 될 것이고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 공부하는 제자 들에게는

영혼의 도가 되리라 믿으며...

 

 

-아버지 약력-

 

어머니께서 늘 우리에게 이르시기를...

'수양산 그늘이 광동팔십리 같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신 분은 네 아버지다' 라고

 

주문처럼 외우게 하셨던   우리아버지는 

충북 청원군 에서 출생하셔서

평생 자식들에게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셨고

근면 검소 희생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셨으며

和而不流의 가훈으로

선비의 도를 지켜오셨다.

고향과 공주에서 수년간 서당을 하시며

제자를 길러내셨고

고향입구에 세워진 고향碑에 자랑스런 고향인으로 오르셨다.

 어머니 유인원님과 결혼하셔서 6남매를 낳으시고

 현재 6남매 다 출가시키시고

아버지의 아내도 천상옥경으로 올려 보내신 후

 

이땅에서  수양산 그늘을 만드신 큰 나무로

성성히 육남매를 품고 계시다.

 

            -큰딸

 

*아야(阿爺)를 번역하고 책을 내면서

 

 

항상 아버지는 우리 자식들의 심장이고 온 세상이시다.

어느 경우에도 말 대로 되면 안 되는 말을 단 한 번도 자식들에게

하지 않으시면 자식들을 길러주셨다. 경제적 여유가 없으실 때 풍요로운 마음으로 길러주시고 자식들 먹는 것을 보면 마른 논에 물 들어가는 것 같다며 기뻐하셨다.

심지어 혹 손님이 무엇을 사왔을 때 자식들이 먼저 다 먹어도

親未啖兒先飽(어버이는 맛보기도 전에 아이들을 배부르다)라시며

나무라지 않으셨다.

경제적 여유가 생기셨을 때는 필요할 때 도와주어야 한다시며

이모저모로 자식들의 형편을 살펴주셨다.

그 아버지께서 연세가 높아지셔도 어머님이 세상을 달리하셨을 때도

당신께서 그것이 편하다고 하셨다는 이유를 붙여서 자식들은 아버지를 혼자 계시게 하였다.

그러면서 건강하시길 바라고 오래 사셔야 한다고 생각하고 말해오며

자식들은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던 약주를 잘 드시지 않으셨다.

미련한 이 자식은 그제서야 무언가를 깨달았다.

어떻게 할까

우선 아버지께서 써 놓으신 글들을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많은 글들 중 먼저 한시를 선택했다.

아버지의 생각을 그대로 보존하고 싶어서이다.

한시를 번역할 때 지은이의 생각과 느낌을 아무리 추론해도 완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글을 대하면서 죄송한 생각이 앞섰다.

먼저 아버지께서 지어놓으신 많은 글들을 제대로 보관을

못해 잃어버린 것들이 많기 때문이요 다음으로 불초자의

한문 실력이 초보의 수준이라 글자를 맞게 옮기고 제대로

번역을 하기에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열심히 하였다. 그리고 초고를 아버지께 올렸다.

별로 가르친 것도 없는 데 꽤 잘하였다고 칭찬을 하시며

기뻐하셨다.

아버지의 수정을 받아 드디어 이 책을 발간하게 되었다.

정말 기쁘다.

이 책이 만들어지는데 공헌이 크신 분이 계시다.

글이 좋아 공부를 하시면서 아버지의 식사를 정성껏 준비해주시고

바쁘신 중에도 틈틈이 시간을 내어 아버지의 글을

정서와 번역도 해놓으신 현강 선생님이시다.

또한 때때로 아버지께 필요한 것을 챙기시고 즐겁게

해주시는 연강 선생님, 매주 아버지의 근황을 살펴주시는

송천형님과 건강을 챙겨주시는 해관형님 사제 간을 끈끈하게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시는 구산 형님, 경회형님, 일일이 이름을 적지 못하는

분들이 계시다.

그리고 집안일에 대하여 어떤 경우에도 나의 생각을

살피고 이해하는 형님. 형수님과 사랑하는 동생들과

나름대로 바쁘지만 나의 뜻을 따라 내가 아버지를 뵈러오는 길이

혼자이지 않게 배려해 주는 나의 아내가 있어 행복하다.

이번 책을 내며 더 기쁘게 생각하는 것은 나의 아내 혜천이

제호를 쓴 일이다.

아버지의 시가 우리 영혼의 노래로 간직될 수 있다는 것에

기뻐하며 아버지의 건강하심을 6남매의 마음을 모아

기원한다.             

                          둘째 아들

 

 *아야(阿爺)-아버지를 어리게 부르는 말..

                         현대말로 아빠같이 친근하게 부르는 말

 

아버지는 고래도 춤추게 하는 칭찬의 기술을 가지셨습니다.

30년 전 처음 아버지를 뵙던 그날부터 지금까지 "우리 집은 아들보다 며느리가 잘 들어왔고 딸보다 사위가 더 잘 들어왔다"시며 "우리 큰사위 같은 사람은 세상에 없다" 시는 송구한 칭찬으로 제게 용기를 북돋아 주셨습니다.

아버지 곁에서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있으면 아버지의 가슴은 즐거운 우주입니다.

아주 오래 제 곁을 지켜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버지를 존경합니다.

            큰 사위

               외손부

어릴 적 긴 머리 곱게 땋아주시던 내 아버지..

비에 젖은 운동화 밤새 연탄불에 말려주시던 내 아버지..

동상 걸려 발갛게 언 내 볼에 때 당신 입으로 아린생콩을 곱게 씹어 붙여주시던 내 아버지..지금도 뵈었다 헤어질 때 내 뒷모습이 안보일때 까지 두손모아 합장하며 기도해 주시는 내 아버지..제가 어떻게 아버지의 딸로 태어날 수 있었을까요.

이런 행복, 이런 축복, 이런 은혜 또 어디 있을까요.

아버지..아버진 영원한 이 딸의 우상 이십니다.

          -둘째딸

 

 

고등학교 시절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나오면 교문엔 늘 아버지가 계셨어요. 제 가방을 받아들며 오늘도 고생했다 손잡아 주셨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들려주신 많은 이야기들.어둡고 인적없던 그길을 아버지의 말씀들로 환하게 밝혀주셨죠. 그렇게 아버진 제게 빛이고 말씀이셨어요. 이제 그 말씀들을 시로 읽는 감격을

누리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아버지의 시집에 정성을 기울인 오빠, 언니들도 고맙구요. 아버지! 이쁜 셋째딸이 많이 사랑합니다.

    -셋째딸

아버지께서는 사랑으로 저를 키우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정성으로 저를 살피셨습니다.아버지의 사랑, 아버지의 정성, 언제나 다함이 없었습니다.이제 제가 아버지께 보답해야 할 때입니다.아버지의 손자, 손녀들에게 사랑과 정성을 다하며 "너희 할아버지께서 아빠에게 그러셨다"라고 말해주겠습니다. 아버지 제 곁에 계셔주셔서 고맙습니다.

         - 아버지 막내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