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에서
오늘 아침 간단한 녹음이 있어서 일찍 출근하는 길이었다
아파트를 막 벗어나는데 할머니 한분이 손을 드셨다.
잠시 망설였다
나도 지금 바쁜데...
그러다 차를 세웠더니 요앞 농협까지만 태워 달라고 하신다.
다리가 너무 아프시다고.
"아니 이렇게 다리가 아프신데 왜 나오셨어요?"
"아파도 장사는 해야지"
"무슨 장사요"
"농협앞에서 호박이랑 호박잎 부추같은거 그냥 텃밭에서 농사지은거 팔아"
"그런데 다리는 왜 그리 아프신건데요"
"젊어서는 이는 장사를 했어.물건이고 하도 걸어서 다리가 고장났어"
"에구..자식들 기르시느라 그러셨네요"
"그렇지 뭐"
할머니를 농협앞에 내려드리고 백밀러로 내다보니
빨간 고무통에 호박몇덩이 호박잎 몇묶음이 담겨있다.
하루종일 농협앞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손님을 기다리실 것이다.
호박 몇덩이를 돈과 바꿔서 가용돈을 쓰실것이다.
우리의 어머니들이 그러셨듯이 고쟁이에 넣어두셨던 꼬깃한 돈을
자식이나 손주위해 끌러내실 것이다.
우리 엄마도 그러셨다.
우리엄마도 무거운 떡 시루를 이고 산길을 오르셨다.
우리엄마도 자식때문에 엄마의 자존심을 돈과 맞바꾸셨다.
우리엄마도 자식 공부때문에 자신의 젊음을 파셨다.
우리엄마도 자식입에 먹을것 넣어 주시려고 엄마의 고통을 돈과 바꾸셨다.
어젯밤 꿈에 엄마를 보았다.
빨간 드레스를 입고 내앞에 오셨다.
무슨 일인지 엄마는 젊으셨다.
엄마는 행복해 보였다.
다행이다. 엄마가 행복해 보여서...
혹시 그 할머니를 통해 엄마를 다시한번 기억하게 하신건 아닐까?
그 할머니를 통해 엄마의 고단했던 생을 다시한번 기억하게 하신건 아닐까?
녹음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서 그 할머니가 계시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할머니가 계시지 않다.
아마 호박을 다 파셨나 보다.
다행이다.
오래 쪼그리고 앉아계시지 않아서...
할머니 주머니속에 호박판 돈이 웃음으로 꽃 피기를 바라면서
나도 오늘저녁 반찬으로 새우젓국으로 볶은 호박반찬을 만들어 볼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