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는 이야기

감자에 싹이나서

비단모래 2007. 2. 3. 10:44

 

                                                    친정아버지께 아들에게 써주신 글

                                                    결혼하면 가훈으로 쓰라고 하셨다고

                                                    아들 핸드폰 바탕화면에

                                                    찍어놓고 늘 마음에 새긴다고.

 

 

 

 

 

 

감자에 싹이나서

 

 

카레 좋아하는 아이에게

모처럼 엄마노릇 하고 싶었다

한쪽 구석에 팽개쳐 논 감자박스처럼

그냥 두어도 쑥쑥 자란 아이

돌아보니 고단함이 역력하다

 

아직 봄소식 없는 이력서 수십장 쓰면서도

겨울눈발속 매화처럼 웃으며

대나무처럼 푸른 아이

 

 

베란다 구석

쳐박아둔 감자박스

그 안에서 생명이 푸르게 자라고 있었다

 

몸을 통째로 내맡긴 감자 알

젖물 빨아먹은 감자잎이 무성하다

 

언제

아이에게 통째로 젖 물린 적 있었던가

 

제 몸 물기 다 빨려

쭈글거리는 뱃가죽만 남았어도

감자 싹

매달고

 

희망노래 부르고 있는

냉동고의 내 어머니

 

감자에 싹이나서

이파리가...

 

가위바위보~가위 바위 보

그것봐

 

어머닌 언제나 져 주시잖아

젖 가슴 다 비워내시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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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귀 꽃

  

붉은 영혼 강을 건너다

발목이 빠진다

쏜살같이 달리는 세월과 함께 달리기란

얼마나 숨 가쁜 일인가



더러는 너와 포개져

네 몸 위에 다리를 올려놓고 쉬고 싶다

아니면 그냥 벗은 몸 그대로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채로



산다는 것은

참나무 굴뚝에 활활 타고

숯으로 남는 것

꺼진 듯한 불꽃

다시 피우며 살아내는 것



때로는 심장 가득 슬픔을 채워두고

보고싶다는 말조차 꺼내지 못한

꽃 한 송이 피워내는 것



소낙비처럼 쏟아내는 거친 숨소리

가만히 덮어두고

몸속에 남아있는 흔적을 닦는 것



머릿속에 감긴 필름을 되돌리며

간혹…웃다가

간혹…울다가



숨넘어가도록 황홀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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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마음으로

                  


겨우내

초록바람 기다리며

꽃을 빚었습니다.


간간히 가슴 저미는 그리운 숨소리

그대 가슴 펼쳐놓을  사랑

꽃으로 피었습니다.


온 천지 꽃 사월

그대 오소서

꽃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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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愁洞



밤꽃 진한 숫 내음으로 피었어

산 벚꽃  분홍입술  배시시 웃었어

마음 그림자 벗어내고

느티나무 그늘 앉으면

먼먼 길 돌아

맑은 개울물로 흘러


휘어진 노래 가락 같은 능수버들

허리를 비틀고 피리 불면


세상먼지 다 털어내고

마음 가벼운

의자하나

등 내밀지


걸러낸 창호지 같은 맑은 물

지나는 바람까지 헹궈내고 있는

無愁洞


거기 깨끗한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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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겨베개


그렇게 까끌 거리는 세월

묵직한 머리로 눌러놓으니

다 부서져

먼지만 남았어


언제였던가

시집오는 이불 보따리에 넣어놓은 왕겨베게 두개

거친 세상 걷다 돌아온 무거운 다리도 받아주고

덜어내지 못한 생각이 쌓여

천만번 뒤척인 파도 같은 멍에 짐



햇살 투명하게 비친 힘줄타고

줄기차게 뻗어가던 담쟁이 넝쿨 같은 삶

그 기진한 세월을

함께 해온 왕겨베개


가만히 머리 대면

不眠 가득한 아침 해 세수하고  엿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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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벌레의 집



아기 자나방 꿈꾸던 아이는

다리 흉터 감추고 싶어 했다


다리 묶어놓은 자지러지게 혼란한 꿈

날개 찢고 싶은 예리한 칼날 품에 숨겼다.

한 뼘도 넘는 흉터사이마다

표시나지 않게 몸 숨기고

자라지 않는 뼈를 한자씩 늘리려 딱딱한 나뭇가지만 부러 뜨렸다.


골반 뼈 떼어다가 어깃장 쳐도

휘어진 뼈 철골 박아 나사로 돌려봐도

부서져 내리던 꿈


기어서기어서

날선 칼날 한 뼘 씩 자라는 절망을 잘라


눈물 마르는 웃음을 재단했다


꼭 한 뼘 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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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소식


계절과도 눈 맞춤 하고 계시는 님

그러네요, 찬 바람 속에 봄을 전하는 진동이 전해지네요.


모르겠어요 봄이 되면 얼마나 눈이 부실지

그래서 얼마나 눈을 감고 걸어야 하는지



그냥 다녀간 흔적 사진처럼 찍어  눈 속에  가두어 두었음 싶다구요

꽃이 피는 소리 꽃이지는 소리 바람이 지나는 소리 물 흐르는 소리

소리를 담아두고 싶다구요 그리고 별무리 나오는 초저녁

끝내 전해야 하는 말이 있다구요


꽃 상처 남기고 떠난 바람소리

흑백사진으로 정지 되었어요


오래된 앨범에다

넣어두고

굳게 닫아 논 서랍 속 기억


꺼.내.보.다



눈 내린 아침


홍매화

빨간 루즈 바르고 길 나설 채비를 하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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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침마다 바다로 간다




아침 출근을 서두르며 넥타이를 매는 사람의 등 뒤에서 바라 본다

하루 종일 저렇게 조여진 목으로 살아야 한다는 게

햇살 비껴 책갈피에 끼워져 납작하게 마른 나뭇잎 같아 부서져 버릴 것 같은 안타까움

인생이 바다라면, 어차피 조각배 타고 흔들려야 하는 거라면 지치지 말고 달리자고

파도가 몰아치고 비바람이 몰아쳐도 그 배는 곧 육지에 닿으리라고

그곳에 가면 물기어린 눈으로 눈동자 기다리던 어린 딸아이의 등대 같은 웃음

희망의 판도라상자 있으리라고


흔들리며 가자고, 흔들리며 가자고, 흔들리며 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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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통증



사진은 왜 캄캄한 암실에서야 잘 보이는 걸까

빛없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얼굴을 더듬느라

허비한 시간 속에  이미 기운을 잃어버린 시계

우리 오늘도 수없이 쏟아놓은 배설물 위에서 째깍 이고 있다

응급실에서

가슴 뼈 찍은 엑스레이를 바라보다 웃었다


마음은 절대 찍지 못하는 저 무지한 기계 앞에

턱 괴고 숨을 참는다

뭘 찾는단 말인가

얇은 필름 속에 들어있는 그 무수한 밀림 속을  헤매며

뼈 속 깊이 숨 가쁘게 뛰는 심장이 말하는 소리를

어떻게 듣는가 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

온몸 친친 감는다


둑처럼 무너져 내리는  통증 

질감 높은 회색빛을 덧입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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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년기


아주 은밀한 성 있었다


한달에 한번 차고 고이는

핏물

벽을 허물어

쏟아내고 쏟아내더니


나팔꽃

시든 자리



불화로 쏟아놓고

슬픔을 말리고 있다


등이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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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 書



마음속에 강 있습니다.

먼지 가득한 길 걸을 때마다 외는 주문

마음속에는 강 있습니다.

그러면 강은 정지한 듯 멈추어있다가도 힘차게 흐릅니다

송사리 빠가사리 피라미

강물에 어울려 함께 수를 놓습니다.

비린내 나는 강물 아니라

가슴을 차고 거슬러 오르며


강물 속에 수천마리

희망을 뿌립니다


힘이 들 때는 주문을 욉니다

마음속에 강물 흐릅니다.


어깨길 없이 빠듯하게 걸어온 세월이지만

강물 지나는  곳 강아지풀 메꽃 달맞이꽃



촉 하나

뽀얗게


불을 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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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목적지에 다다르기 위해서만

비켜주지 않는다

36.5도의 일정한 온도로 끓는 피

온도계를 데우는 사람에게

심장을 내어준다


길은


그 자리에서

계절의 그림을 그리며

지나는 사람들에게

상처 난 옆구리를 다독이며

푸른 신호등 켠다


길은


되돌아 올 사람에게

되돌아오지 않을 사람에게

누구에게나

순하게

몸을 편다


길은 돌아올 낡은 약속을 믿고 오늘도 가슴을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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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지지 말 것



老교수님 서재

완고한 느티나무처럼 빼곡하게 가지런히 꽂혀있는 책

교수님 손길 닿고 마음 닿은 반듯한 길


자꾸 흐트러놓는 사람 있어

참다못해

호통보다 더 무서운 침묵




백지위에

뜨거운 불같이 타고 있는

.

.

.


怒! 拖治!!


그대를 흐뜨려놓은 죄 때문에 오금 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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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 끝에 서 본 사람은 벼랑에서도 희망의 꽃을 본다.



절벽 끝에 서서 코앞으로 다가오는 날카로운 칼날을 마주하는

위태로움을 핏줄 속으로 뜨겁게 받아드리며 그 칼날을 잡고 다시 서는 것


거친 호흡소리

침 튀기는 대사 들으며 관객과 배우가 하나가 되는 연극

따뜻한 집 인생 그리는 우리는 노숙자다.


추억 무늬 기억하면서 하나씩 램프가 꺼져갈 때 마다

마지막 위해 생을 마무리하는 ‘램프들’은

어디를 가나 사 모으는 작은 촛대들 생각나 웃음 짓게 했다.


해진 인생 다시 촘촘이 박음질 하고 싶었을 욕망 생각하니 가슴 저렸다.

힘든 일 있으면 하느님께 기도하며 해결해 달라고 할 때 누군가 그랬다

‘하느님도 바쁘다고..그러니 그런 것쯤은 스스로 해결하라고


조폭과 아줌마의 공통점 몇 개중에서 ‘문신을 한다’라는

말 생각나게 하던‘흉터’

내 몸 곳곳 칼자국 지나간 자리 감추고 싶던 움추림에서

흉터자국 통해 사람들을 이해하고 이해받는 새로운 인생 시작한


싸한 눈물 없이 담담히 받아드리는 마지막 길 남긴 유품

우리의 모습 아닐까?


타래로 꼬아버린 절망 벼랑에서

희망 꺾어들고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


찐한 눈물도 환한 웃음도 없는 파스텔톤의 연극은

녹색 짙은 날 우울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절벽 끝에 서 본 사람 벼랑에 핀 희망 꽃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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