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는 이야기

도시락에 관한 단상

비단모래 2012. 11. 8. 17:38

도시락..

도시락을 생각하면 우선 어머니의 도시락이 생각나는데

나는 도시락하면 왜 가슴이 아릴까?

 

초등학교 다닐때  양은 도시락에

유리병에 담은 김치 하나

그외 반찬은 기억나지 않는다.

 

 초등학교를 대전에서 다니는데

도시아이들은 이상한 것을 싸가지고 왔다.

아버지가 미군부대 다니는 복순이는 넓적한 이상한 부침을 싸오기도 했고(나중 그게 미군햄이란걸 알았다)

국희는 계란을 넣고 진간장에 볶은 밥을 싸오기도 했고

흔한 콩자반.멸치볶음은 대부분이었다.

 

아이들은 그것들을 난로에 올려놓고

흔들어 먹기도 하고 서로 반찬을 나누어 먹기도 했는데

가난한 선비의 딸 ,도시변두리에 사는 우리집의 가난은

나의 도시락을 아이들과 나눠 먹을 수 없게했다.

 

쌀 한 톨 들어가지 않은 꽁보리밥이라도 가져 갈 수 있는 게 다행이었고

실은 도시락을 싸지 못할 때가 부지기수 였다.

 

복순이가 내민 이상한 네모부침은 실은 찝찔한게 맛이 이상했다.

미군햄 특유의 냄새는 정서에 맞지 않기도 했다.

 

소풍 때는 더했다.

그래도 다른아이들은 시금치와 단무지 계란 정도는 들어갔지만

우리집은 김치를 길게 넣어 신문지에 두어 줄 말아주시면

나는 아무도 없는 곳에 혼자앉아 그  김밥을 우적우적 먹었다.

 

도시락..

그 후로는 싸지 못했다

중 고등하교..과정이 그러했으니..

 

그래서 아이들이 소풍이라도 가는 날이면 나는 축제처럼 도시락을 싼 기억이다.

나는 아이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2~3개씩 도시락을 싼 세대이고 보니

도시락 싸는 일에 정성을 다하려 했다.

 

신혼 초

남편도 점심 값을 아끼자고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닌 적이 있다.

그때도 기쁘게 도시락을 쌌었다.

좋은 반찬은 아니더라도 아내의 마음을 싸주고 싶었다.

 

요즘 식이요법 때문에 보름간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다.

천일염이 들어가도 안되고 해조류 생선류 유제품이 들어간 것을 제외한 도시락을 싸야했다.

 

다행이 현철한 며느리가 엄마 스타일 이라고

예쁜 분홍색 도시락을 사왔고  무요오드 소금과 무요오드된장을 주문했고

샐러드를 만들어 차곡차곡 쌓아놓았다.

반찬도 식이요법 하는 사람에게 맞는 여러가지 것을 주문해서 도시락을 쌀 수 있었다.

 

이번 도시락은 남편의 정성이 들어갔다.

아침마다 따끈하게 국을 끓였고

샐러드에 사과를 깎아 넣어주고

고구마를 구워 넣어주고 하면서 아내의 도시락을 쌌다.

 

그 도시락이 수술 후 2주만에 일하는 아내를 지치지 않게 했다.

 

그리고 오늘 마지막 도시락을 먹었다.

내일 방사선을 하기로 해서 휴가를 냈고

일주일 지나면 일반식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락을 감사히 먹으며 고마운 사람들이 스쳐갔다.

나와 같은 병으로 먼저 수술하고 이렇고 저렇고 알려 준 수자씨

도시락을 싸와 함께 먹어 준 이쁜 후배

식이요법 끝나면 맛있는 곳 데리고 다니면서 먹이겠다고 약속해 준 많은 지인들..

 

그리고 응원해 준 나의 아들 며느리

간호사인 둘째 아들덕분에 수시로 맞은 영양제

도시락을 싸준 남편

 

약간 입맛에 맞지 않아도 잘 먹어 준 나..자신..

 

이렇게 훌륭히 임무를 완수해 냈다.

 

도시락..하고 부르니

참 따뜻하다.

 

내 인생에 이렇게 따뜻한 마음이 모인 도시락을 잊지 못 할 것이다.

모두 모두 고맙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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