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는 이야기

물..비싸게 사먹는 시대에 살며..

비단모래 2011. 1. 28. 10:33

 

 

"물이 원유보다 1.6배 비싸다"

작년 91억원어치 수입

40여년 전 열살 때 대전으로 이사오고 가장 신기했던게 수도와 전깃불이었다.

시골에서 살때 집근처에 바가지 샘물이라고 옹달샘이 있어서 어머니는 질그릇을 이고 물을 길러 다니셨다.

오빠들이 크면서 가끔 물지게로 길어나르기도 했고

아버지 제자들이 물지게로 물을 길어다 주기도 했다.

 

어머니의 샘 숫들바탕

그 샘이름이 왜 숫들바탕인지는 몰라도 이 숫들바탕은 어머니의 고단한 삶이 흐르고

또 아낙들의 유일한 음담의 장소였고 웃음의 장소였고 소문의 장소이기도 했다.

나중 우물물이 생기기도 해서 긴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올렸고

펌프가 생겨 마중물을 붓고 퍽퍽 퍼올리면 팔뚝만한 물이 땅밑에서 올라와

힘차게 쏟아졌다.

학교 갔다 오다가 개울을 건너며 목이 마르면 두손모아서 퍼 마시거나 어디서든 엎드려 물을 마시면 되었다.

배탈도 없었다.

 

그러다 대전으로 이사를 오니 이사온 집 마당에 이상하게 생긴 것이 엄마 젖꽂지처럼 꼭지를 달고 서있었다.

그걸 돌리니 물이 콸콸 쏟아졌다.

참 신기했다.

그러나 그 편리함속에는 한달에 꼬박꼬박 식구수대로 계산한 수도세를 내야했다.

우리집은 식구가 많아서 수도세도 버거웠다.

엄마는 그 주인집 구석에 있는 우물을 많이 퍼서 쓰라고 하셨다.

그래야 전기세를 내면서 우리는 수도보다 우물을 많이 쓴다고..수도세를 조금이라도 깎으실 참이었다.

그러나 전체 수도세가 얼마인지 주인집은 말하지 않았고 엄마는 늘 그 수도세에 미심쩍어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때 한집에 세사는 집이 네집인가 되어서 엄마는 가끔 주인네는 수도세를 내지 않고 세사는 사람들에게

다 걷어서 내는것 같다고도 하셨다.

 

참 많은 세월이 흘렀다.

물이 흔하게 우리생활에 파고들었다.

집에서도 물을 틀어놓고 매일 목욕을 하고 설거지 할때도 콸콸..

한방울씩 똑똑 떨어지게 해놓고 쓰던 예전의 기억을 나는 잊었다.

 

지금은 무슨 핸드폰 광고처럼 콸콸이다.

우리나라가 물 부족국가로 분리된건 이미 오래전이고

우리는 물에게 위협당하고 있다.

 

생수를 사먹는 시대..수도세를 내면서 그물을 그냥 먹거나 끓여먹는 것도 부족해

생수를 사먹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생수종류도 헤아릴수 없는데 외국에서 수입하는 생수까지 우리를 점령하고 있다.

물이 원유보다 비싸게 들여온다고 한다.

두렵다.

조선시대 봉이 김선달이 오늘을 내다보고 이미 물을 팔았다니 놀아울 뿐이다.

웃음으로 넘겼던 일이 현실이 되고 있으니...우리는 결국 봉이다.

 

봉이 김선달 이야기를 해본다

 

 조선 후기의 풍자적인 인물 봉이 김선달 (본명 김인홍.자호로는 낭사) 평양출신의 재사 김선달이

자신의 경륜을 펼치기 위하여 서울에 왔다가 서북인 차별정책과 낮은 문벌 때문에 뜻을 얻지 못하여 울분하던 중

세상을 휘젖고 다니며 권세있는 양반, 부유한 상인, 위선적인 종교인들을 기지로 골탕먹이는 여러 일화이 있다.

김선달이 봉이라는 별호를 얻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내력이 있다.

김선달이 하루는 장구경을 하려 갔다가 닭전 옆을 지나가게 되었다.

마침 닭장 안에는 유달리 크고 모양이 좋은 닭 한마리가 있어서 주인을 불러 그 닭이 '봉'이 아니냐고 물었다.

 김선달이 짐짓 모자라는 체하고 계속 묻자 처음에는 아니라고 부정하던 닭장수가 봉이라고 대답하였다.

비싼 값을 주고 그 닭을 산 김선달은 원님에게로 달려가 그것을 봉이라고 바치자, 화가 난 원님이 김선달의 볼기를 쳤다.

김선달이 원님에게 자기는 닭장수에게 속았을 뿐이라고 하자, 닭장수를 대령시키라는 호령이 떨어졌다.

 그 결과 김선달은 닭장수에게 닭값과 볼기맞은 값으로 많은 배상을 받았다. 닭장수에게

닭을 '봉'이라 속여 이득을 보았다 하여 그 뒤 봉이 김선달이라 불리게 되었다.

또한 유명한 일화로 대동강물을 팔아먹은 재밌는 얘기가 있다.
김선달이 대동강가 나눗터에서 사대부집에 물을 길어다 주는 물장수를 만났을 때 기발한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물장수를 데리고 주막에 가서 얼큰하게 한잔을 사면서 내일부터 물을 지고 갈때마다 내게 한닢씩 던져주게나 하면서

동전 몇닢씩을 물장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이튿날 의관을 정제하고 평양성 동문을 지나는 길목에서

의젓하게 앉아서 물장수들이 던져주는 엽전을 헛기침을 하면서 점쟎게 받고 있었다.
이 광경을 모든 사람들이 수곤대며 살피고 있었다. 이때 옆전을 내지 못한 물장수가 선달로부터 호되게 야단을 맞고 있었다.

이를 본 한양인들은 대동강물이 선달 것인데 물장수들이 물값을 내지 못하게 되자 오되게 야단을 맞고 있는 것으로 보여

내일부터는 밀린 물 값까지 다 지불하여야 한다고 엽전준비에 야단이었다.
이를 참다 못한 한양상인들은 어수룩한 노인네 하나 다루지 못할 것인가 하면서 장수꾼들이 능수능란한

말솜씨로 꼬득여 주막으로 모시게 된다. 술잔이 오가고 물의 흥정이 시작되었다. 선달은 조상대대로 내려온 것이므로

 조상님께 면목이 없어 못팔겠다고 버티면서 이를 물려줄 자식이 없음을 한탄까지 하였다.
한양상인들은 집요하게 흥정을 했다. 거래금액은 처음에는 1천냥이었다. 2천냥, 4천냥으로 올라가 결국 4천냥에 낙찰되었다.

당시 황소 60마리를 살 수 있는 돈이었다. 당시의 매매계약서는 다음과 같다.

품 명: 대동강(대동강)
소유자 봉이 김선달
상기한 대동강을 소유자와의 정식 합의하에 금년 5월 16일자를 기해 인수함을 증명함과 동시에 천하에게 밝히는 바이다.

인수자- 한양 허풍선
인수금액-일금 4천냥
인도자 김선달

선달은 못내 도장 찍기를 서운한 듯 도장 찍기를 주저한다. 그러자 상인들은 졸라대기 시작하여 결국 계약이 체결된다.

재산은 모으지 못했다고 한다.워낙 풍류와 시를 좋아하고 어려운 서민을 보면 양반들을

골탕먹이고 뺏은 돈을 서민에게 나눠주었다고 한다.

 

가슴이 뻐근하다.

맑은 물한잔 마셔야겠다.